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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시드니의 밤

한기연 시인. 평생교육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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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3.19 16:48
  • 기자명 By. 충청신문
▲ 한기연 시인. 평생교육강사

바람이 불어 온다. 날씨는 흐리지만 봄의 기운이 느껴지는 3월도 중반을 지나고 있다. 새 학기가 시작되어 하루가 어떻게 가고 있는지도 모르게 바쁘게 지냈다. 한숨 돌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푸른 하늘과 흰 구름사이로 호주의 쪽빛 바다가 보인다.

지난 2월 지인들과 호주로 떠났다. 일상생활의 스트레스를 여행으로 풀곤 했는데 그때마다 여행을 가기 전에 느끼는 설렘이 가장 좋았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가기 전부터 힘들었다. 두 번의 교통사고로 크게 다치지는 않았으나 심신이 많이 지쳐 있었고, 여행 전날까지 쉴 틈 없이 바빴다. 오랜 경험으로 여행 가방을 대충 꾸렸다. 장시간 비행을 고려해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홍콩을 경유해 거의 하루 만에 호주에 도착했다. 날씨는 늦여름에서 초가을의 쌀쌀함도 느껴졌다. 가이드를 만나서 본격적인 호주여행이 시작되었다. 시드니에서 사흘을 관광하고 비행기를 타고 멜버른으로 가서 이틀을 구경하는 일정이었다.

시드니에서 시작된 여정은 예순은 되어 보이는 한국남자분이 기사 겸 가이드로 함께 했다. 모녀지간, 혼자 온 여성, 그리고 우리 팀이 합류하여 일곱 명이 일정대로 진행하였다. 이탈리아나 스페인을 갔을 때는 서른 명 정도가 버스로 이동해서 관광지마다 점을 찍듯 오기 바빴는데, 호주여행은 적은 인원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첫 날 남태평양과 연결된 포트스테판 사막을 갈 때는 날씨가 맑아서, 뜨거운 모래 언덕을 올라 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스릴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 뒤로 시드니의 날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변덕을 부려서, 우산이나 겉옷, 한국에서 올 때 입었던 겨울옷이 필수가 되었다. 호주의 그랜드캐니언이라고 불리는 블루 마운틴 국립공원을 갔을 때는 비가 오고 흐려서 구름에 가려 있었다.

해안에 서식하는 돌고래 무리의 유영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배를 타고 바다를 나갔을 때는 갑판 위에 올라서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배에 탄 누군가가 “돌고래다”하고 외치면 우르르 몰려갔지만, 이미 돌고래는 바닷속으로 모습을 감춘 뒤였다. 나도 이쪽저쪽 옮겨 다니며 돌고래를 열심히 찾았다. 그런 내 모습이 웃기기도 했다. 처음 돌고래를 보러 간다기에 우리나라처럼 훈련된 돌고래를 생각했었다. 먼발치에서 돌고래 꼬리를 본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시드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오페라하우스는 노천카페에서 유명한 칵테일인 레몬라임비터를 마시며 불빛에 아른거리는 야경으로 마주했다. 육지를 이어서 바다에 5800개의 기둥을 박아 건물을 지은 시드니 하우스의 밤은 은은한 불빛 아래 저마다의 인생을 펼쳐가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가는 곳마다 여기가 한국인가 착각이 들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여행 온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하버브릿지와 오페라하우스를 바라보며 유럽의 젊은 남녀들과 뒤섞여 라이브음악을 들으며 보낸 밤은 이국적이었다.

우리 일행은 양모이불과 약품을 구매했는데, 여행이 끝난 후 열심히 일해서 갚을 걱정을 하면서도 예상 외로 많이 샀다. 그래서인지 기사아저씨는 기분이 좋아져서 예정에도 없던 시드니대학을 보여 주겠다고 하셨다. 호주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시드니 대학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흐릿한 불빛 아래 오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학교가 멋스러웠다.

시드니에서의 일정은 변덕스러운 날씨로 인해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거기에 초콜릿을 걸고 퀴즈만 연실 내던 수다스런 기사 아저씨로 인해 창밖 풍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낮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밤의 아름다움이 있어서 다행이다.

한기연 시인. 평생교육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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