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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기념관 이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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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0.04.26 19:20
  • 기자명 By. 뉴스관리자 기자
이화장(梨花莊)은 본채, 별채인 조각당(組閣堂), 그리고 여러 부속 건물들로 구성돼 있다. 본채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내외가 살던 곳이고 조각당은 1948년 7월 20일 대통령에 당선된 이승만이 이곳에 조각 본부를 두고 초대 내각을 구상한 곳이다. 이화장(梨花莊)이 자리잡은 이화동은 원래 배밭이었고 이화정이라는 정자가 있었기 때문에 이화정동(梨花亭洞)이라 했다.

낙산(駱山) 기슭에 위치한 이화장(梨花莊)은 중종 때의 문신(文臣)인 기재(企齋) 신광한(申光漢)의 옛 집터이며 인근에는 효종의 잠저(潛邸)인 용흥궁(龍興宮)이 있었으며 또 인조의 세째 아들 인평대군(麟坪大君)의 석양루(夕陽樓)가 있었다. 이화장 뒷문 개울가 바위에 정조 때 서화가이며 한성판윤을 지낸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이 쓴 ‘紅泉翠壁(홍천취벽)’이라는 큼직한 각자가 있었다.

1945년 대한 광복이 되자 미국에서 귀국한 이승만은 1947년 11월부터 이화장(梨花莊)에 기거하게 됐으며 대한민국 정부수립 운동을 전개해 대한민국 초대 국회의장에 당선되고 이어서 초대 대통령에 당선돼 1948년 7월 경무대로 이사했다. 1960년 4월 27일 대통령에서 물러난 이승만은 이화장으로 이사했고 5월 하와이로 망명했다. 1965년 7월 19일 하와이에서 서거하자 이화장으로 안치됐다가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한양 도성의 좌청룡(左靑龍)인 낙산(駱山) 서쪽 기슭에 위치해 있는 이화장(梨花莊)은 정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이 나오고, 작은 계곡 넘어 ‘ㄷ’자형의 본채가 있으며, 오른편 언덕 위로 ‘ㄱ’자형의 조각당(組閣堂)이 서있다.서향을 한 본채는 중앙에 대청마루가 있고 그 오른쪽에는 접견실과 서재가 있다. 대청마루 왼쪽에는 침실과 부엌이 있다. 두벌대 장대석 화강석 기단 위에 선 정면 7칸, 측면 6칸, 굴도리,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조각당은 ‘ㄱ’자형의 작은 건물인데 약간 북쪽으로 튼 서향을 했다. 회첨골을 이룬 곳에 위치한 1칸 반 온돌방을 중심으로 남쪽으로 장마루를 깐 작은 대청 한 칸이 서향해 있고 서쪽으로 부엌 한 칸이 딸렸다. 굴뚝은 온돌방 동쪽 밖에 독립해 서 있으며 온돌방 앞에는 아주 작은 쪽마루가 놓였다. 기단 없이 네모 화강석 초석 위에 사각기둥을 세운 납도리,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며 대청마루 처마 아래에는 ‘組閣堂’현판이 걸려 있다.

김민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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