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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생활고 모녀 사망 두 달, 아무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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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4.09 16:02
  • 기자명 By. 충청신문

숨진 지 두 달이나 넘어 발견된 증평 모녀의 주검은 아직도 우리 곁에 복지사각에서 고통에 시달리는 이웃이 얼마나 많은 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행정통장을 복지통장으로 전환하고 우편집배원, 수도검침원 등과 협약을 맺는 등 자치단체마다 위기 가정을 찾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이들 모녀에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위기 가정 발굴체제가 아직도 허술하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 준다.

지난 6일 충북 증평군의 한 아파트에서 40대 초반의 어머니와 네 살배기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혼자 살기 너무 힘들다. 딸을 먼저 데려 간다”는 어머니의 유서로 미루어 딸을 숨지게 하고 자신도 뒤따른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시신 상태로 볼 때 모녀가 적어도 두 달 전에 숨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모녀의 죽음은 관리비 연체가 계속되는 걸 이상하게 여긴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의해 발견됐다.

모녀가 살아온 삶의 내력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주변 정황을 살피는 것으로 그 심경을 헤아릴 뿐이다. 비극의 씨앗은 갑작스런 남편과의 사별인 듯하다. 든든한 버팀목이 갑자기 사라지면 보통의 가정은 금세 무너지는 게 현실 아닌가. 남편과 함께 갚아나가던 수천만 원의 빚을 혼자 떠안으면서 경제적 어려움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수준을 넘어섰을 것이다. 경찰은 남편을 떠나보내고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어머니가 극심한 생활고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우야 어떻든 한 가정이 단지 돈이 없어 삶을 포기하는 세상이라면 대체 정부는 왜 존재하는지 의문이 든다. 국민이 국가에 세금을 내는 이유는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받기 위함이다. 모녀도 세금을 내온 대한민국의 국민인 만큼 국가의 보호를 받을 당연한 권리가 있다. 현행법상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에 해당되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분명한 건 모녀가 막다른 결정을 내리기까지 정부의 어떤 복지혜택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사회안전망에 구멍이 뚫렸다는 말은 이럴 때를 두고 하는 것 아닌가.

정부가 4년 전 생활고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복지사각지대 발굴 대상자를 조사하고 있지만 이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정부는 2개월에 한 번씩 단전 단수 등을 확인해 각 자치단체에 명단을 통보하는데 모녀의 가정은 이 명단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 단전 단수가 아니라 연체였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수도사용량이 ‘0’라면 한번쯤 살펴봤어야 했다.

증평군은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 외에 복지사각에 놓인 이들을 발굴하기 위해 ‘쑥쑥 통’을 운영하고 있다.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교사, 공무원, 응급구조사 등 쑥쑥 통 구성원은 지원 대상자를 발견하면 의무적으로 신고하도록 했다. 또 개별 방문이 가능한 한전과 가스공급업체와 MOU도 맺었다. 그럼에도 모녀는 이 망을 통해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사회안전망은 가능한 한 촘촘히 짜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촘촘히 짠다고 해도 구멍은 있게 마련이다. 법적, 제도적 장치도 한계가 있다. 이 구멍과 한계를 막아줄 수 있는 건 결국 이웃이고, 이웃의 관심이다. 우리 선조들은 밥 때가 되면 이웃의 굴뚝에 연기가 나는 지를 살폈다. 이런 이웃공동체의 복원이 증평 모녀와 같은 비극을 막을 수 있는 지속 가능한 길이다.

증평 모녀의 죽음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새삼 가르쳐준다. 21세기는 국민소득이 몇 만 달러를 돌파했다고 웃고 박수치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소외계층을 방치하고 약자를 외면한 상태에서 쌓아올린 숫자는 의미가 없다.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국가의 근본은 복지에 있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배고프지 않고, 아프면 치료받고, 몸을 누일 최소한의 거주 공간을 확보하는 건 국민으로서 권리다. 국가로서는 마땅히 해야 할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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