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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미래 100년, 격차 없는 균형발전 이뤄야

대전시 서구 개청 3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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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4.10 18:43
  • 기자명 By. 정완영 기자
30년 만에 인구 20만→49만명의 대전 중심 도시로 
원도심지역 재개발 · 재건축… 살고싶은 도심 만들기
16만평 평촌산단 조성 등 일자리창출 선순환 인구유입 기대
 
[충청신문=대전] 정완영 기자 = 1988년 1월 1일 대전의 서구청이 개청하면서 대전은 발전의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올해는 서구청이 개청된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대전의 중심도시 서구청 개청 30년을 맞아 갈마동 청사 15년과 둔산동 청사 15년으로 나눠 서구의 발전상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1985년 4월에 대전행정구역상 중심지인 둔산 지구가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 고시되면서 신흥 둔산 신시가지 조성사업을 시작했다. 중구에서 분리된 서구는 당시에 14개동으로 인구는 20만에 조금 못 미쳤다.
현재 23개동에 인구가 49만 명에 조금 미달하니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대전시 인구 150만 명 중 1/3을 차지하는 대전의 중심도시가 됐다.
 
▲ 서구 발전 토대
1993년 대전엑스포 개최였다. 행사 준비를 위해 도로 신설 및 확장, 도로 시설물 정비, 공한지 정비 등을 통해 단숨에 서구는 대전의 중심으로 방문객들이 반드시 한번은 들르는 곳으로 대전의 대표 도시가 됐다.
서구의 비약적 발전은 둔산 신시가지 조성사업이다. 이를 통해 정부기관 11개 외청이 입주를 마치고 대전시청사가 둔산 지역으로 이전함에 따라 서구는 제2의 행정수도로 본격적인 기능을 시작했다.
또한 법원, 검찰, 각종 금융기관 등의 이전과 더불어 명실공히 대전의 중심이 되었고 대전예술의 전당, 시립미술관, 한밭수목원 등이 조성되면서 서구는 문화와 행정이 조화를 이루는 쾌적한 도시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제2의 도약을 위해 도마, 변동, 복수지구 등의 원도심 지역에 재개발·재건축을 통해 활력을 불어넣고 있으며, 도안 및 관저지구의 신도심권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서구의 개청은 국가적 대행사와 맞물려 있었다. 그래서 결국은 많은 시민들에게 주목받지 못했다.
서구 분구인 1988년에 앞서 1987년은 전국적인 민주화운동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시행되어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됐다. 1988년은 4.26 조기 총선을 앞두고 전국이 연초부터 과열되기 시작돼 서구 분구는 대전의 유수한 신문 사회면에 조그마한 기사로 취급됐다.
행정적 측면으로는 1989년 대전직할시 승격을 앞두고 마지막 박차를 가하고 있던 시기였다. 이에 국토의 중핵도시로서 국가의 중추관리기능을 담당할 도시개발(정부둔산청사 이전)과 성장거점도시로서의 행정기능 개편(서구청 발족)을 펼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타 직할시와 비교할 때 인구와 면적은 비슷하지만 경제력과 산업기반시설이 뒤지는 것으로 나타나 경제계에서 이를 보강해야 한다는 여론이 대두되기도 했다.
서구청 개청 및 직할시 승진과 맞물려 공직사회는 충남 등 외지에서 전입희망자가 초만원 사태를 빚으며 승진 및 후속 인사 등에 들뜬 분위기였다.
1988년 중반은 서울하계올림픽이 개발도상국에서 처음으로 개최돼 국민의 자긍심을 높였지만 서구청 개청은 이래저래 큰 이슈가 되지 못했다.
행정 내부적으로는 둔산동에서 기성동까지 길게 늘어져 있는 지리적 특성으로 출장 시 차량이 필수였지만, 구청 내 관용차량이 적어 운전직이 각광을 받던 시대였다.
또한, 컴퓨터가 막 보급되던 시절로 주요부서에만 컴퓨터가 보급됐다. 일반적인 행정작업은 원지를 긁어 등사하는 방식인 ‘속칭 가리방’이라는 작업을 하던 시절이었으니 공무원들이 타자수들의 눈치를 봐야 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구청이 존재하는 이유는 구민이 안전하고 편안한 생활을 영위하도록 하고 우리 지역이 발전하여 인구의 유입이 있으면서 지역 전체가 활력이 넘치고, 지역 주민들이 의견이 구정에 반영되는 그런 도시를 만드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직자들이 부정부패 등이 없는 엄정한 공직기강이 우선이고, 지역사업 발전을 위한 예산 확보, 주민들의 적극적인 구정참여 등이 또한 필요하다.
 
▲ 서구청 둔산에 새 둥지
갈마동 시대 15년을 마치고 서구청은 2002년 7월 2일에 둔산으로 청사로 이전했는데, 6월부터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렸다.
대한민국은 준결승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고 7월 1일 임시공휴일로 지정돼 하루 늦어졌다.
현재 둔산청사는 지하1층 지상 7층으로 최대 난제는 주차장 부족이다. 둔산청사 건축은 원래 지하2층 지상10층으로 계획됐지만 의회 일각에서 예산낭비라는 의견이 제기돼 현재와 같은 틀을 가지게 됐다.
1995년 실질적인 지방자치의 시작인 민선 1기가 시작되고 시간이 흘러 지방자치가 심화됨에 따라 공직자들의 마인드가 점차 주민을 우선하는 분위기로 변화되어 왔고, 인구의 증가에 따른 예산 배정도 확대되었고, 각종 위원회 및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제도나 시책 등이 증가하게 된다.
 
▲ 전국 최초 인구정책 기본 조례 제정
서구의 인구는 2005년 50만9000명을 정점으로 하락하는 추세로 2018년 2월 기준으로 48만8000여 명이다. 인구 유출의 주요원인은 유성구 노은 지구 등의 개발 및 세종시의 건설이다.
인구는 미래의 도시 경쟁력이자 우리 지역을 이끌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므로 서구는 보다 종합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책을 구현하기 위해 2017년 10월 인구정책 전담조직을 신설했다.
정책 추진을 위한 기반구축과 네트워크 실현을 위해 전국 시군구 처음으로 ‘서구 인구정책 기본 조례’를 제정하는 한편 ‘서구 인구정책 위원회’를 전국 자치구 처음으로 출범시켜 인구문제 극복을 위한 민관협치의 토대를 마련했다.
 
▲ 보다 살고 싶은 도심을 위해
일반주민, 초·중·고·대학생들에게 인식개선 교육을 통해 가족친화사회, 여성친화 가치관 확산을 위한 다양한 일을 해 나가야 한다.
또한 도마·변동·용문·탄방 등 원도심지역의 재개발과 재건축을 통한 도심재생화 사업을 진행해 활력이 넘치고 사람이 살고 싶은 도심지역을 만들어 나가려고 한다.
또한 구봉지구에 발전교육원 등이 들어서고, 16만평의 평촌산업단지 등을 조성해 일자리창출을 통한 선순환 인구유입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서구는 과거 둔산권 개발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왔으나, 2008년 이후 도시성장이 정체되고, 지역 간 격차도 심화됨에 따라 서구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지역 간 고른 성장을 위한 균형발전 추진이 반드시 필요하다.
둔산권역은 기존의 문화 인프라를 활용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문화중심 의미지를 강화하고, 도심 녹지공간을 이용한 품격있는 문화·예술 도시를 만들어 가고 있다. 
도마·변동 등 원도심권역에는 도시재정비를 촉진시키기 위해 도마·변동에는 진입도로와 주차장, 게이트볼장, 정자, 파고라, 야외체력단련시설 등 기반시설을 조성했다.
이밖에도 복수동, 탄방동, 용문동 도시 재정비촉진사업을 통해 생활환경을 지속해서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
관저·도안 등 신도심권역은 젊음의 테마거리 조성, 행복주택 건립이나 가수원동 119안전센터 이전설치, 관저동 종합체육센터 건립 등을 통해 지역 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자연 생태를 가장 풍족하게 담고 있는 기성권역은 농촌 활성화 정책을 추진해 농가수익 증대를 도모하고, 장태산을 중심으로 반디의 숲 체험장 조성과 등산로 정비 등 힐링·생태도시 기반을 강화하고 있다.
지역의 자원과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발전 전략으로 소외와 격차가 없는 균형발전을 이루는 것이 100년을 내다보는 서구가 준비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한다.
 
 
“열정의 서구 30주년 됐습니다”
장종태 서구청장 인터뷰
 
▲ 서구청 개청 30년 소감은?
- 아! 벌써 30년이 흘렀습니다. 개청했을 때가 말입니다. 그때가 공무원 들어와서 10여년이 지나 7급 때였었죠. 당시 서구청 총무과에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소감이라면 글쎄요. 감개무량합니다. 
왜냐하면 서구 발전사가 제 개인사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34년의 공무원 시간 중 대부분을 서구에서 보냈고, 지금 구청장을 하고 있다. 대전에서 50여년을 사는 동안 대부분을 서구에서 생활했습니다.
누구보다 서구에 애정이 많았고 열정을 쏟아부었고 그만큼 사랑했습니다.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네요. 그 시절이, 참 순수하고 행복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에 비하면 많은 것들이 부족했지만….
 
▲ 혹시 개인적으로 존경하거나 본받을 만한 분이 있다면? 
- 전성환 구청장과 가기산 구청장이 많이 기억 납니다.
업무능력은 물론 구청장으로서 주민과의 소통에도 탁월한 능력을 가진 분이 전성환 구청장입니다. 
대외적인 면에서도 적극적이어서 전국의 광역시에 서구가 있던 인천, 대구 등과 자매결연을 맺기도 했고, 대민활동도 적극이어서 자생단체와 직원을 연계한 구봉산 산악회 조직해 민관소통을 위한 기구로 발전시키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기획을 어떻게 하는지 잘 가르쳐 주었습니다.
또 한 분은 가기산 구청장입니다.
관선과 민선을 합쳐 네 번 구청장을 하셨는데 first서구의 초석을 다졌고, 옛날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출신으로 중앙정부의 체계와 수준을 지방에 전파하고 지방 공무원의 수준을 높이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습니다.
지방행정 혁신이나 지역에 맞는 정책을 우선시해 중앙부처에서 조례준칙안이 내려왔을 때 전국 지자체에서는 그냥 대부분 준칙을 따라가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가 구청장은 중앙에서 내려온 조례가 책상머리에서 만든 정책으로 목적이나 추진방법이 지역과는 전혀 맞지 않은 경향이 있다며 우리 지역 상황에 맞게 새로 뜯어고쳐 써야 한다고 해 그렇게 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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