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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 상해의거 78주년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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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0.05.03 18:27
  • 기자명 By. 충청신문/ 기자
4. 상해 의거의 역사적 의의

윤봉길 의사의 1932년 4월 29일 상해의거는 일본 침략군 사령부의 핵심 인물들을 모두 섬멸함으로써 일제에게 정치적·군사적으로 매우 큰 타격을 준 한민족의 쾌거로 중국천지와 온 세계를 뒤흔들어 놓아 일본인들의 간담을 싸늘하게 하고 세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리고 상해의거를 계기로 하여 1919년 3·1운동 이후 일제의 탄압에 못이겨 울분을 가슴속으로만 다지고 있던 우리 한민족의 자주독립정신과 기개를 온 천하에 높이 떨쳐 상해 임시정부의 위상도 크게 높아지고 국제연맹은 일본을 극동의 침략자로 규정하게 되었으며 세계 각국의 약소민족해방운동은 불이 붙기 시작했다.

또한 만보산 사건으로 붕괴된 한 중 양 민족의 연대를 다시 회복하게 하고 강화해 중국에서의 한민족독립운동을 가능케 하는 여건을 회복시켜 주었다.

그리하여 중국의 장개석(蔣介石) 총통은 “중국의 4억 인구와 백만 대군이 해내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 윤봉길 의사가 해냈으니 참으로 장하다”고 칭찬하고, 1933년에 중국의 낙양군관학교에 한국광복군 특별반을 창설했으며, 카이로회담에서도 한국의 즉시 독립을 강력히 주창함으로써 한국의 항일독립운동을 적극 도와주었다고 한다.


5. 나가는 말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성장한 매헌(梅軒) 윤봉길(尹奉吉) 의사는 문무(文武)를 겸비하고 의협심이 강하며 지도력이 뛰어난 걸출한 인물이었다. 그는 관직도 없는 한 평민으로서 농촌 계몽과 부흥, 조국의 자주독립과 민주복지사회의 실현을 위해 마치 양초처럼 젊음을 스스로 불사르고 자기의 귀중한 생명을 조국과 민족에 기꺼이 바친 위대한 항일독립운동가이자 농촌운동가였다.

실제로 그는 일제의 암흑시대에 목숨을 걸고 향리에서 농촌 계몽과 부훙운동에 힘써 자주독립정신과 자립정신을 앙양하였을 뿐만 아니라 1932년 4월 29일 상해의거를 일으켜 3·1운동 이후 일제의 탄압으로 침체되었던 항일독립운동에 새로운 활기를 불러일으키고 세계 만방에 배달겨레의 불굴의 자주독립의지와 기개를 높이 떨쳐 국제사회에 국위를 선양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리하여 1945년 8월 15일 조국이 광복되자 김구(金九), 조인원(趙仁元), 신현상(申鉉商) 선생 등이 주축이 되어 1946년 5월에 매헌 윤봉길 의사의 유해를 일본으로부터 고국에 봉환하여 국민장으로 효창공원에 모시고 1962년에는 건국공로훈장 중장을 추서했다. 1965년에는 충의사를 창건하였고, 1972년에는 유품과 유물 53점이 보물 568호로 지정되었으며 광헌당·저한당·부흥원·충의사 등이 사적 제229호로 지정되었다. 충의사 경내에는 매헌농민상, 매헌기념관, 충의관, 매헌기념탑이 세워졌다. 한편 재단법인 매헌 장학재단법인이 설립되어 육영사업을 하고 사단법인 매헌기념사업회와 월진회는 해마다 추모제와 매헌문화제를 거행하여 이곳을 독립운동의 요람으로 가꿈으로써 윤봉길 의사의 유지와 업적을 선양하고 있다. 그리고 1988년 6월 21일에는 윤봉길 의사 탄신 80주년을 맞이하여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매헌기념관 숭모회관을 건립하고 개관함으로써 윤봉길 의사의 숭고한 유지와 업적을 전 국민들이 본받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일제가 윤봉길 의사를 폭도로 매도하고 역사를 왜곡하며 해방 이후 우리의 역사교육에서 상해의거만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그의 농촌 계몽과 부흥운동이 소홀히 취급되어 대부분의 국민들이 윤봉길 의사의 진면목을 잘 알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그리하여 윤봉길 의사의 숭고한 애국애족정신과 복지평등사상 및 자주독립정신이 올바로 계승 발전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윤봉길 의사의 유지와 업적을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먼저 초·중·고의 사회과와 국사 교과서에 윤봉길 의사의 생애와 업적을 종합적으로 소개하고, 매헌 윤봉길 의사에 대한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을 강화하여 국민들이 윤봉길 의사의 진면목을 잘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 예산을 보다 많이 확보하여 서울 효창공원에 있는 윤봉길 의사의 묘소, 서울 서초구 양재동과 상해 홍커우공원에 건립된 기념관, 그리고 덕산에 있는 윤봉길 의사의 사당과 유택 및 유물전시관을 잘 보존하고 홍보하여 관광자원으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끝>

신상구/천안중학교 국사과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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