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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과거, 현재, 미래

김정호 백제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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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4.25 16:56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김정호 백제문화원장

가금씩 친구들과 여행을 간다. 친구와 추억을 되새기는 일은 신나는 일이다. 지역 역사, 문화 해설을 듣고 박물관을 둘러본다. 어김없이 “어제, 오늘, 내일”이 전시되어 있다. 지난 이야기들이 모여 현재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 나는 현재에 살고 있지만, 과거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다.

과거, 현재, 미래. 문법시간에 골치를 아프게 했던 12시제가 떠오른다. 논문이나 보고서를 꾸밀 때 정형화된 양식, 과거-현재-미래. 방송이나 토론이나 일상화된 패턴이다.

시간에 관한 명언들은 많다. ‘과거는 이미 존재하지 않고, 미래는 아직 닥치지 않았으며, 존재하는 것은 오직 현재 뿐이다.’, ‘내일이란 오늘의 다른 이름이다.’, ‘오늘이란 죽은 자가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다.

나에게 과거, 현재, 미래는 어떤 의미인가? 과거를 회상하는 사람들의 반응은다양하다. 내 과거는 아름다운가, 떠올리기조차 싫은가? 헛된 욕망덩어리, 부끄러움의 연속이었을 수도 있다. 광기의 젊은 날, 주체할 수 없었던 번민과 분노, 아픔. 나는 신의를 저버린 적도 많고, 남을 아프게 한 적도 많다. 지나고 나면 후회가 되는 삶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지나간 토막의 과거로 현재를 망가뜨릴 수는 없잖은가? 오늘은 어제와 내일 사이의 가장 정확한 중심임은 틀림없다. 그렇다고 과거를 부정할 수 있는가? 없다. 과거는 교훈을 준다.

현재는 인식하는 순간 과거가 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행위는 지나고 나면 어떻게 비춰질 것인가?

지방선거가 시끄럽다. 선거가 시끄러운 게 아니라 후보자들이 시끄럽다. 후보자들보다 더 시끄러운 지지자들이 부담스럽다. 물어 뜯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름다운 경쟁에 회의가 인다. 말을 갈아 탄 후보를 보면서 정체성에 혼돈이 온다. 거리마다 펄럭이는 색깔 현수막에 눈이 어지럽다.

탄핵, 적폐, 미투, 댓글, 갑질, 민망한 시대를 지나고 있다. 우리 모두는 피해자이면서, 잠재적 가해자이다. 한 방에 훅 간 사람도 여럿이다. 과거는 부정한다고 지워지는 것이 아니다. 과거가 현재의 발목을 잡는다고 몸부림치지 마라. ‘히트 앤드 런’에 능숙했던 사람이 반가울 리 없다. 자기의 고통에는 예민하게 반응하지만, 남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많다. ‘과거에 비해’ 그런 사람들은 안 뽑혔으면 좋겠다.

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은 비례하지 않는다. 과거가 긴 사람도 있고, 현재가 긴 사람도 있다. 미래가 곧 다가올 것 같아 불안한 사람도 있고, 너무 멀어 안달하는 사람도 있다.

어찌 보면 모든 게 과거 진행형이다. 고향, 학교, 군대, 직장 등 모임에 가면 온통 과거다. 과거는 현재다. 나이를 먹을수록 과거와 산다. 나 역시 생을 마치는 날까지 그러할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는 연결되어 있다.

과거가 현재에 관계하듯이, 현재는 미래에 관계를 한다. 남북 정상회담이 내일인데, 기대가 크다. 지금 나는 조력자인가, 훼방꾼인가, 방관자인가? 이 땅에 평화가 와서 자유롭게 금강산을 여행하고 싶다. 그 날이 오면, 거기에도 대한민국의 과거-현재-미래가 전시될 것이다.

‘시간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이라는 하이데거의 명제에 동의한다. 유한자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마라. 설움의 날은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고야 말리니/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또다시 그리움이 되는 것”

푸시킨의 단정적인 긍정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4월의 끝자락이다. 생각 좀 하고 살자.

김정호 백제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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