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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봄바람 꽃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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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4.30 15:42
  • 기자명 By. 충청신문
▲ 한기연 시인. 평생교육강사

아파트 앞 화단에 노란 산수유 꽃과 자목련이 피었다. 연둣빛 움이 트고, 꽃망울을 터뜨려 낮보다 환한 봄꽃이 여기 저기 피었다. 어느 날 갑자기 환하게 피어 난 듯 보이는 그 꽃들은 겨우내 봄을 준비해 왔을 것이다.

지난 4월 27일은 역사의 한 획을 긋는 감동적인 순간이 펼쳐진 날이다. 65년 동안 굳게 닫혀 있던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가볍게 넘어 온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손을 잡고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생중계됐다.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은 오랜 시간 동안 많은 갈등을 겪었으나, 분단의 비극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대화와 교류 노력도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 1953년 6·25 전쟁 휴전 이후 50년 남짓 상호간의 신뢰를 쌓고 평화를 이루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져 왔다. 지난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은 2007년 이후 11년 만의 공식적인 자리였다.

하루 종일 TV나 라디오에서는 남북정상회담 장소로 이동하기 전의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에서부터 남북정상의 만남과 그 뒷얘기가 끊임없이 나왔다. 일산 킨텍스 메인프레스센터에 모인 내외신 3000여 명의 기자들 중에는 눈물 흘리며 감격스러워 하는 모습도 보였다. 학교 교육현장에서는 실시간 방송을 시청하면서 통일에 대한 생각을 넓혀 가는 산 교육을 펼치기도 했다.

중·장년층은 통일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로 통일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젊은 세대의 통일에 대한 인식과 필요성은 낮은 편이었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남북의 퍼스트레이디가 만났다. 북한 리설주 여사는 연분홍색 옷을 입고, 김정숙 여사는 하늘색의 화사함으로 한반도에 부는 봄 분위기를 더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시작된 남북 교류협력은 우리 예술단의 평양공연을 계기로 활발해졌다. 4월 1일 ‘2018 남북평화협력기원 평양공연-봄이 온다’ 첫 공연은 남측 공연으로 이루어졌다. 이틀 뒤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북측 예술관과의 합동 공연 ‘우리는 하나’를 진행했다. 지난 2002년 개최된 ‘MBC 평양 특별공연’ 이후 16년 만에 이루어진 공연을 보면서 북측 관객들은 환호와 박수로 뜨겁게 호응했다.

일요일 오전에 남북정상회담의 주요 합의에 대한 정부의 발표가 특보로 보도되었다. 관심 있게 본 것은 평양시간을 서울시간에 맞춰 표준화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김 위원장이 회담장에 서울 시각과 평양 시각을 보여주는 시계가 각각 걸린 것을 보고 남과 북의 시간부터 먼저 ‘통일’ 하자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예정된 합의가 아니라 대화 과정에서 처음 나온 얘기라는 사실이 놀라웠고, 남과 북의 시간이 다름도 처음으로 알았다.

T.S 엘리엇(Eliot)의 시 ‘황무지’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4월은 겨우내 땅속에 있던 새싹들이 꽃을 피우는 달이다. 꽃을 피우기 위해 캄캄하고 단단한 흙을 뚫고 나와 추위와 햇볕을 견디는 생명력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남북정상회담을 보면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남과 북이 오랜 시간 한파를 견디고, 얼음장을 두드리는 봄바람이 불어 오기 시작했다. 옥류관의 ‘평양냉면’을 맛 보고 싶은 소박한 남쪽 사람들의 희망이 꽃바람으로 한반도를 물들이길 바라며 시 한구절 읊조린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한기연 시인. 평생교육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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