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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어찌하리오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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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5.07 15:42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혜숙 수필가

국토 대 청결 활동이란 문자를 받았다. 바쁜 일은 겹친다더니 세 가지 일들이 나를 기다린다. 나 하나쯤 빠진 들 어떠랴하는 생각으로 주저앉고 싶지만 누구나 그런 생각이라면 어찌 단체의 일원이라 할 수 있을까.

평소에는 고속도로 입구에서 시내 쪽으로 청소를 했는데 이번엔 시내 외곽 쪽으로 갔다. 이 쪽엔 쓰레기가 별로 없겠지 했는데, 웬 걸? 많아도 너무 많았다. 쓰레기를 볼 때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도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쓰레기를 주우면서 양심 없는 사람에게 욕을 한다. 우리는 언제 선진국민이 될 수 있을까. 선진국민이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행동을 본 것이다. 비닐봉투에 가득 담아 휙 던지고 간 쓰레기가 치워도 끝없이 나온다.

큰 무더기의 쓰레기가 있어 주우러 갔더니 이게 웬 말이란 말인가. 한 박스 정도나 되는 음식들이 버려져 있다.줍다 보니 제사음식이었다. 곱게 담은 떡과 밤 과일 심지어 음료수까지 뜯지도 않은 것들이었다.

도대체 음식이 무슨 죄가 있다고 손도 대지도 않고 버리고 간 것일까. 버릴 거라면 아예 가지고 오질 말든지. 그 죄를 어찌 받으려고 저런 행동을 했을까. 저렇게 음식을 고스란히 버린 것은 분명코 며느리란 생각이다. 한숨이 나왔다.

언젠가 어이없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명절 차례를 지내고 시어머니는 이것저것 음식을 잔뜩 싸서 박스에 담아 며느리에게 주었다. 그 며느리는 집으로 가다가 휴게소에서 음식을 버리고 갔다. 집으로 돌아간 며느리에게서 소식이 없자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전화를 했다. 박스 밑에 그동안 품을 팔아 번 돈 삼백만원이 있는데 잘 쓰라고 했다. 며느리는 휴게소 뒤돌아가 찾아봤지만 돈을 찾을 수가 없었다나.

어떻게 부모님이 싸주신 음식을 하찮게 버릴 수가 있을까. 버리고 갈 거라면 아예 가지고 가지 말지. 부모님의 사랑을 헌신짝처럼 버리다니. 음식 버린 것은 아깝지 않고 돈은 아까워 찾으러 갔다니 어찌 그게 사람이란 말인가.

버린 제사 음식을 보니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른다. 언제부터 우리가 풍족하게 살았다고 음식을 함부로 버린단 말인가. 지구 반대편에선 먹을 것이 없어 죽어 간다는 데 그 죄를 어떻게 받으려고 저런 행동을 하단 말인가. 텔레비전에서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주 방송되는 것을 보지도 못했단 말인가.

아프리카에 고아가 된 삼 형제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교육방송에서 보았다. 십대인 맏이는 다리가 썩어가는 데 치료는커녕 먹을 것이 없어 아픈 다리를 끌고 돈이 될 만한 고물을 줍는다. 그마저 없을 때는 삼 형제는 물만 마시고 고픈 배를 움켜잡고 잔다. 사흘 동안 물만 마셨다. 조금이라도 먹을 것이 생기면 동생들 먹이고 맏이는 굶는다는 방송이다.

음식을 버리고 간 사람의 자식이 결혼해서 자신들처럼 싸준 음식을 버렸다고 생각하면 어떤 마음이 들까. 삶은 인과응보라 생각한다. 그들도 자식에게 그 같은 일을 당하지 않는다고 어찌 장담할 수 있겠나.

내가 어릴 때도 먹을 것이 많이 부족했다. 동족 간의 전쟁으로 폐허가 된 후라 모든 것이 넉넉하지 못했다. 도시락을 가지고 오지 못한 친구들이 참 많았다. 까만 보리밥에 김치만 가지고 가도 행복하던 시절이다. 쌀밥을 싸오는 친구가 있으면 선생님이 야단을 쳤다. 혼식과 분식을 장려하던 시절이다. 그렇다고 하얀 쌀밥을 싸오는 친구가 몇 명이나 되었을까. 버려진 음식을 보면서 나의 어린 시절과 지구 반대편의 아이들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1㎞도 안 되는 거리에서 나온 쓰레기가 트럭 한 대도 모자랄 것 같다. 싱가포르처럼 벌금을 내라면 해결될까. 깨끗해진 거리를 보니 마음은 상쾌하지만 마음 한 구석이 무거운 돌을 얹어 놓은 것 같이 무겁다.

이 시간 남북 정상이 만나 평화를 이루기 위한 회담을 한다. 전 세계 이목도 한반도에 집중되어있다. 만약에 평화롭게 서로 왕래가 되었을 때 북한보다 발전된 우리가 그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해 보자. 잘산다고 생각했던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보여주기 위해서 질서를 지키라는 것은 아니다. 부끄럽지 않는 국민이 되는 길. 스스로 질서를 지키는 것. 그것이 바로 기본이고 선진국민이지 싶다.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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