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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듣는다는 것

김정호 백제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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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5.23 16:16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김정호 백제문화원장

나이를 먹으니,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소리가 안 들리니, 자기 목소리가 커진다. 대화를 할 때, 제대로 듣지 못하는 것은 큰 장애다. “가는 귀 먹었어?”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핀잔을 받는다. 보청기의 도움을 받아도 신통치 않다.

누구나 이명(耳鳴) 증세가 있다. 윙윙거리거나, 매미 울음 소리가 들린다. 외부의 자극이 없는데, 내부에서 소리가 들린다. 심지어는 환청(幻聽)에 시달리는 이들도 있다. 정신분열증에 가깝다고 하는데, 깜짝 깜짝 놀라는 경우도 있다.

동물의 감각 중에 청각은 오묘하다. 청각의 대상은 소리이다.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데 소리를 듣고, 판단한다. 웃고 울고, 흥분하고 무서워한다.

동물들은 저마다 들을 수 있는 가청주파수 영역이 다르다. 인간의 가청주파수는 20Hz~20khz 사이라고 한다. 인간이 들을 수 있는 범위는 제한되어 있다. 초저음파나 초음파는 감지하지 못한다. 소나 말은 더 낮은 주파수, 개나 말은 더 높은 주파수를 감지한다고 한다. 초음파로 어둠 속을 나는 박쥐, 음파탐지기를 사용하는 돌고래 등등 동물의 청각은 경이롭다. 인간의 청력은 특정한 동물이나 곤충과 비교할 때 초라하기 그지없다.

인간은 말로써 표현을 한다. 말로 전달하고, 듣고, 소통한다. 며느리의 안부 전화 한 통화는 행복 그 자체다. 마누라의 잔소리는 사랑 그 자체다. 소통은 듣는 것, 들어주는 것이다.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의 듣는 방식은 다르다. 개인끼리는 통하는데, 집단에 속하면 먹통이 된다. 들리는가? 응답하라. 반응이 없다. 먹통은 답답하다. 들리는 것, 듣지 말아야 하는 것, 들어주어야 하는 것, 들려주어야 하는 것을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귀를 닫은 사람들이 많다. 제대로 된 청각을 가지고 있는데도 우이독경, 마이동풍이다. 논리적 접근이 불가능하다.

송창식의 노래가 떠오른다. “왜 불러, 왜 불러, 돌아서서 가는 사람을./안 들려, 안 들려, 마음 없이 부르는 소리는~” 들려도 들리지 않는다.

소문이 꼬리를 문다. 뜬소문, 헛소문, 루머, 유언비어, 풍문으로 들었소, 가짜뉴스가 난무한다. 정치인들이 마이크, 확성기를 잡고 토해내는 막말은 듣기에 민망하다. ‘듣보잡’이라는 인터넷 은어도 거북스럽다. 듣도 보도 못한 잡스러운 것, 잘 알려지지 않은 인기 없는 사람이나 물건을 비하하는 말이다. 귀를 정화해야 한다.

소음 공해가 위험치를 넘었다. 오늘도 공장에서 기계 소리에 귀마개를 하고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미안하다. 층간 소음으로 인한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시집살이 고됨을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장님 3년’이라고 빗댔다. 귀 막고, 입 닫고, 눈 감고 합이 9년이다. ‘직장살이’도 그렇다고 해서 웃었다.

황희 정승의 일화가 재밌다. “네 말이 옳다. 네 말이 옳다. 당신 말도 옳소.”

누가 내말을 하고 있는지, 귀가 가렵다. ‘남이 험담을 하면 왼쪽 귀가 가렵고, 칭찬을 하면 오른쪽 귀가 가렵다’ 고 그리스 신화에도 나온다. 그럴 리가 있으랴만, 심리적으로 욕먹을 짓을 하지 말라는 경고다.

엿듣고, 귀동냥하고, 아첨하고 우리는 산다. 들리는 것이 무엇인지, 위험한 것인지, 바람직한 것인지 평형감각을 유지하자. 귀가 간지러운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 경청(傾聽)하는 습관, 주의 깊게 듣고, 귀담아 듣고, 흘려듣지 아니하고, 가려듣기, 쓴 소리에 귀 기울이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도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듣다못해 한 마디 하고만 경우가 다반사다.

성장의 정점에 이르면 노화가 진행된다. 청각능력이 소멸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다산 정약용은 일렀다. “나이가 들면서 눈이 침침한 것은 필요 없는 작은 것은 보지 말고 필요한 큰 것만 보라는 것이며, 귀가 잘 안 들리는 것은 필요 없는 작은 말은 듣지 말고 들리는 필요한 큰 말만 들으라는 것이니라.”

내 귀 어두워진 것 잊고 목소리를 크게 하니, 듣는 젊은이들은 피곤하다. 참견 줄이고, 말수 줄이고, 음성을 낮출 일이다. 정신이 깜빡거리는 것도 살아온 세월을 다 기억하지 말라는 것이리라.

듣는다는 것!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가끔씩 귀를 씻자. 대숲 바람소리, 들꽃의 속삭임, 빗소리, 눈 내리는 소리, 파도소리, 자연의 소리는 평온을 준다.

영혼의 소리도 듣자. 이순(耳順), 귀가 순해 지고, 마음의 귀를 열면….

김정호 백제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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