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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포럼] 콘서트의 의미

박상희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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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6.21 16:01
  • 기자명 By. 충청신문
▲ 박상희 피아니스트

콘서트(concert)라는 단어는 공연장을 찾지 않으면 쉬이 접하는 단어가 아니었는데, 요즘은 주변 곳곳에서 발견한다. 최근에 접한 경제 칼럼니스트 팀 하포드의 경제학 콘서트, 예전부터 참 신선하다고 느꼈던 정재승 교수의 과학 콘서트, 이 외에도 콘서트라는 단어를 접목한 책들은 수도 없이 많다. 토크 콘서트라는 형태의 공연도 생겼다. 음악이 있어야 할 자리에 사람들의 목소리만 있는 것이 참 획기적이라고 생각했다. 북 콘서트, 푸드 콘서트 등 새로운 무엇을 소개하거나 시연이 필요한 자리에도 콘서트라는 말이 많이 보인다. 콘서트라는 단어가 주는 힘이나 매력은 무엇이기에 이렇게 자주 사용되는 것일까. 어떠한 점이 기획자나 대중의 이목을 사로잡았을까 새삼 궁금해졌다.

콘서트라는 말은 일반적으로는 대중을 모아놓고 직접 음악을 연주하는 자리를 뜻한다. 연주회나 음악회라는 단어로 대치되는데, 오늘 날에는 음악, 연극, 무용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연출되는 ‘공연’이라는 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상용하는 것 같다. 콘서트(concert)는 라틴어 ‘콘(con)-함께’ 과 ‘체르토(certo)-경합하다, 토론하다’라는 말이 합쳐진 콘체르토(concerto)라는 말을 영어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16세기에는 성악 파트와 기악 파트 각각의 독보적인 영역이 함께 음악을 이룬다 하여 콘체르토라 하였다니 라틴어의 뜻이 더욱 잘 이해가 간다. 바로크 시대까지는 왕이나 귀족 중심의 작은 음악회가 주를 이루었다. 이때에는 오늘날처럼 정해진 프로그램을 그대로 진행했다기보다 그 날 온 귀족이나 왕들의 요청을 받아 발췌하여 연주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기존 프로그램을 마친 후에야 관객의 요청에 의해 연주자가 번외의 작품을 선사하기도 하는데, 아마 이 때의 문화가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콘서트에 귀족이 아닌 일반 대중이 모이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오페라가 유행하면서부터이다. 점차 음악의 소재도 신과 왕을 위한 소재에서 대중의 이야기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실제로 있었던 일들이 모티브가 되기도 하고, 세태 풍자 이야기가 큰 호응을 받기도 했다. 이는 시대적인 변화와 맞물린, 계급적인 문화가 대중적인 문화로 변화하는 에너지를 갖게 된다. 국한된 그룹의 향유보다는 시대가 대중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때의 콘서트의 특징은 음악의 실연과 관객에만 있지 않다. 무대와 객석 간의 심리적인 거리가 확연히 가까워지고, 관객의 만족도도 중요해진다. 음악을 권위의 부속물로 생각하던 왕과 귀족이라는 관객 대신 일반 대중의 호응으로 실연자들은 다양한 소재와 표현의 자유를 얻었다. 대중 또한 문화를 통한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단이 생겼다.

이러한 이유로 경제학이나 철학 등 어렵다는 편견을 가진 학문의 책일수록 콘서트라는 제목을 많이 쓰지 않았을까. 접근의 장벽을 낮춰주고,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즐겁게 그리고 친근하게 다가서려는 그들의 노력에서 발로하지 않았을까. 많은 사람들의 그 분야에 대한 관심을 가질수록 그 학문이 갖게 되는 중요도와 힘도 커진다. 상아탑에 갖힌 학자들처럼 고고하게 머무르지 않고, 지식을 함께 나누려는 움직임은, 방대한 정보에 쌓여 혜안을 갖지 않으면 살기 혼란스러운 요즘의 대중들이 환영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음악 외 분야에서 콘서트라는 단어가 쓰인 풍경과 의미를 곱씹어 보는 와중에 다시금 음악에서의 콘서트를 생각해보게 된다. 예전의 모습에 비하면 오늘 날의 콘서트는 대중과의 교류를 위해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컨셉과 제목을 갖는 연주회들이 늘고 있고, 해설을 하거나 영상을 함께 보여주며 이해를 돕는 연주회도 많다. 형태나 편성에 있어서도 다양한 시도들이 많이 보인다. 반면 대중의 호응에 치중한 나머지 공연의 구성이 너무 가볍다거나, 유명 연주자의 힘에만 빈 공연도 눈에 보인다.

콘서트라는 말의 매력은 ‘함께’하는데 있는 것 같다. 음악의 실연과 관객이 요소로 꼽히는 사전적 의미를 벗어나 여럿이 모여서 감상하고 토론하는 자리가 바로 콘서트인 것이다. 어떠한 것을 매개체로 공감과 공유하는 행위라고 새롭게 의미를 지어보고 싶다. 콘서트라는 말의 빈도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그러한 활동과 행위가 점점 부족해진다는 것의 방증일 것. 인간은 끊임없이 교류하고 대화하며 삶을 채워나간다. 여러 가지 의미로서의 콘서트가 생활 곳곳에 함께하기를 바란다.

박상희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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