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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접시 꽃 수다 꽃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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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6.26 16:49
  • 기자명 By. 충청신문
▲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뒤란 담장 아래 접시꽃이 피었다.

작년에 친정집에서 어린 싹을 캐다 심었더니 연일 무더위 속에서도 제법 뽐내고 있다. 어릴 적엔 여름 꽃인 접시꽃을 채키화라고 불렀다. 한자로 촉규화란 이름이 변하여 채키화가 되었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어찌 보면 나팔꽃과 무궁화 꽃을 닮기도 하여 더 정겹고 내 기억 속에는 더 다정한 꽃 이름이다. 벌써 유월도 하순에 접어드니 잎겨드랑이에서 짧은 자루가 있는 꽃이 아래쪽에서 피어 위로 올라가며 핀다. 다닥다닥 붙은 진분홍색 접시 모양의 꽃들이 어찌 보면 우리 동네 전봇대에 매달린 스피커를 닮은 듯하다.

지난 주말, 아사모모임을 했다. 우리는 50대 중반부터 60대에 걸쳐 일곱 명이 모여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이름 짓고 1년에 두 번 정도 만나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수다를 떨다 헤어진다. 그리 하는 것만도 서너 시간이 후딱 가버려 헤어질 땐 다 못한 이야기가 많아서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임이란 외모 가꾸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보단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는 중년여자들의 만남이다. 농사일을 많이 하여 손톱이 부러지고 버석버석한 손으로 악수를 하여도 화장기 없는 얼굴로 마주하여도 친근하니 이해하는 사이다. 모처럼 만나니 말 보따리는 또 얼마나 많겠는가. 자신의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말보따리를 다 풀지 않고는 헤어지지 않을 태세다.

욕심 없고 우유부단한 청주댁도 이 날 만은 속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부모가 되면 어느 자식이나 사랑스럽겠지만, 우리 부모 세대들은 재산이 있으면 있는 대로 주고 없으면 없는 대로 거의 장남을 가장 신뢰하고 의지하고 헌신하며,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건 어느 집이나 비슷한 것 같다. 청주댁도 지금껏 부모님께는 아들 보다 훨씬 잘해드렸는데 부모가 재산정리를 하면서 자신이 물려받은 것은 서운함뿐이라며 이야기하는 내내 얼굴이 어두웠다. 안타까웠다. 금쪽 같이 생각하는 아들만 주지 말고 딸도 자식이니 좀 나누어 주셨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또 다른 음성댁은 자랑이 많다. 농사도 많이 지으면서 로컬푸드 교육을 받고 봄철 내내 하나로 마트 로컬푸드 매장에 두릅, 부추 같은 채소를 갖다 팔았다고 한다. 그날그날마다 수입이 짭짤하니 재미가 쏠쏠했단다. 전에는 동기간이나 지인에게 나누어 먹던 것을 죄다 내다 팔았으니 시골의 인심이 야박하단 소릴 듣지 않을까 걱정하는 음성댁이지만 열심히 사는 그의 모습이 대견했다.

요즘사람들은 남이 힘들게 농사지은 것을 그냥 넙죽 받아먹지만은 않는 것 같다. 나름이겠지만 받으면 받는 만큼은 보답을 하려고 한다. 이참에 우리 건강을 생각하며 로컬푸드 매장에 싱싱하고 좋은 웰빙 채소와 과일을 제공하는 음성댁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무더웠던 그날, 커피잔을 기울이며 서너 시간을 우리의 하소연과 이야기에 같이 속상해 하고 같이 즐거워했다. 한마디 말에도 반응해주는 사람 앞에서는 마음을 모두 열게 되는 것 같다. 수다면 수다일지언정 우리는 그냥 들어주는 자체로 위안이 되고, 서로의 이야기에 반응해주니 말하는 순간 만큼은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 대우 받는다는 느낌이 들어서 즐거운 것 같다. 반년 만에 만난 우리는 누구랄 것도 없이 입에 스피커를 달고 수다꽃 을 피웠다. 카페 주인에겐 좀 미안하지만 가슴은 시원함을 느끼면서.

오늘 따라 뒤란 접시꽃도 저녁 그늘에 앉아 수다꽃을 피우고 있다.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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