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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고속도로 개설 40주년을 되돌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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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0.07.11 17:14
  • 기자명 By. 충청신문/ 기자
1964년 12월 8일 서독의 수도 본에 있는 에르하르트 총리 공관에서 군사혁명으로 집권한 박대통령과 독일 부흥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르하르트 총리 간 정상회담이 열였다. 회담 후 박대통령은 본에서 필른까지 20Km 구간을 아우토반을 이용해 이동했다.

이 구간은 1928년 착공해 32년만에 완공한 세계 최초의 자동차전용도로였다. 박 대통령이 탑승한 벤츠 승용차는 시속 160Km로 달렸다. 이 때 박 대통령은 큰 충격을 받았다. 서독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박 대통령은 고속도로건설에 손을 댔다. 이렇게 시작된 경부고속도로가 올해로 개통 40주년을 맞았다.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전국이 일일생활권에 들어서면서 1960년대 중반 불붙기 시작한 경제성장이 본 궤도에 오르는 계기를 맞았다. 1967년 4월 제6대 대통령선거에 입후보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선거공약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발표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야당 등의 맹렬한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미래지향적 안목에서 경부고속도로 개설을 추진했다.
한국 경제의 압축성장과 산업화의 초석을 놓았다. 박 대통령은 서독을 방문했을 때 자동차 전용도로인 아우토반을 기반으로 경제부흥을 했다는 설명을 듣고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때도 정치권의 비판과 여론의 반발은 극심했다. 당시 우리는 6·25전쟁의 폐허에서 가까스로 벗어났지만 여전히 가난한 시절이었다.

1968년 2월1일 서울~수원 간 공사를 시작으로 2년 5개월 만인 1970년 7월7일 대구~대전 구간을 끝으로 서울과 부산을 잇는 총연장 429㎞의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됐다. 지금부터 꼭 40년 전이다. 경부고속도로 개설에 투자한 총공사비 429억 7천300만원은 당시 국가예산의 23.6%를 차지할 정도로 방대한 규모였다.

그리고 그 때는 1인당 국민소득이 142달러에 불과했고 자동차 등록대수도 고작 5만대였다. 그런데도 재정파탄의 우려와 시기상조라는 비난 속에서 단군 이래 최초의 대규모 국책사업에 첫삽을 떴다. 그 후 경부고속도로를 시작으로 경인, 호남, 남해, 구마, 영동 등 고속도로가 잇따라 뚫리고 남북 7개축, 동서 9개축의 격자형 간선도로망이 갖춰졌다.

경부고속도로 개통은 경제뿐 아니라 국민들의 생활패턴, 여가활동 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관광지 접근성이 향상되면서 관광, 레저산업도 급격히 발달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가치 창출였다. 이처럼 본격적인 고속도로 시대가 열리면서 자동차 수요도 급증했다.

자동차 생산이 늘면서 제철 수요가 커지고 부품 산업이 발달하는 등 제조업에 대한 파급효과도 컸다. 한반도를 남북으로 연결한 428km의 이 고속도로는 자금과 기술, 여론의 뒷받침도 없던 시절 맨주먹으로 일궈낸 역사였다. 경부고속도로 개설에는 1일 3교대 작업으로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그야말로 대역사(大役事)였다.

경부고속도로 개통으로 전국이 1일 생활권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물류혁명도 시작된다. 전국에서 제작, 생산되는 제품이 단 하루 만에 수요자에게 전달되는가 하면 산업의 발달로 인구도 증가했다. 원활한 물류 소통이 경제성장의 기본요건임을 간파한 지도력과 시대정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위업이다.

돌이켜보면 경부고속도로 개통 이후 지난 40년 동안 한국경제는 무섭게 달려왔다. 국내총생산(GDP)은 1970년 81억 달러에서 2009년 8203억 달러로(101배), 수출은 8억4000만 달러에서 3635억 달러로(433배) 늘었다. 경부고속도로 개통 40주년이 주는 메시지는 모든 경제주체에게 새로운 각성과 다짐을 촉구하는 데 있다.

경부고속도로의 최근 위상은 개통 당시와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당시에는 경인고속도로(1968년 개통) 외에는 고속도로가 전혀 없었으나 최근에는 30개 노선, 총연장 3776km의 고속도로를 뚫어 중심 교통체계를 갖췄다. 경부고속도로는 대한민국 경부선의 종착점이 아니다.

앞으로는 북한과 중국을 거쳐 동남아시아까지 연결되는 명실상부한 아시안하이웨이의 시발점으로서 부각될 수 있어 국제적 위상도 높아 질수 있을 것이다. 경부고속도로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수송능력 향상, 국제적 위상 제고 등 외적 측면보다는 폐허 수준의 국가경제를 선진국 수준으로 도약시킨 결정적 전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4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과연 시대 변혁을 몰고 왔던 그때의 도전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지 되새겨 봐야한다. 지금까지 국책사업으로 인천국제 공항 건설을 내세울 수 있을 뿐 세종시 수정안의 좌절, 대운하 계획 포기, 4대강 사업 논란, 기업도시-혁신도시 지지부진 등 최근 10년 사이 주요 국책사업은 잇달아 실패하거나 국민적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거대 국책사업이 종말을 고(告)하고 있어 안타깝다. 앞으로 국책사업은 국가와 국민의 삶에 대한 질(質)을 높이고 국민에게 편안함와 행복감을 충족시켜 줄 새로운 개념의 사업이라면 경부고속도로 개설처럼 과감하게 끌고 나가야 하는 국책 리더십이 절실하다고 본다.

임명섭/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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