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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백수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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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7.09 16:18
  • 기자명 By. 충청신문
이혜숙 수필가
이혜숙 수필가

새소리와 바람소리만 들리는 길. 한적하고 고요해서 산책하기도 좋고 맑은 공기를 마시니 건강도 좋아지는 그런 길이다. 싱그러운 새소리와 구름이 유유히 흘러가는 길을 걸으며 지구상에서 우리 둘만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 순간만큼은 우리만이 지구의 주인이다.

시골이라지만 차가 많이 다녀서 산책하기가 매우 불편하다. 남편과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차가 덜 다니는 곳을 발견했다. 길을 걸으며 바른 자세로 걷는 것에 신경을 썼다. 바로 걷기만 해도 건강해진다는 강의를 들었기 때문이다. 바르게 걷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리는 물론 발가락까지 신경 쓰다 보니 집에 오면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건강해지려다가 더 아파지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된다.

편평태선이란 병명을 받은 지 4년이 되었다. 아직도 완쾌되지 않아 약을 쓰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약을 오래 쓰면 고혈압과 당뇨가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하루에 8킬로미터 정도 걷는 것으로 합병증을 예방하려고 했다.
산책길에 뽕나무가 많다. 새순이 돋을 때면 새순을 따다가 나물로 먹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뽕잎은 누에만 먹는 것인 줄 알았다. 지인이 정월 보름에 나물을 무쳐 왔는데 맛있어서 물어보니 뽕잎이란다. 

처음에는 주머니에 한 주먹정도만 따왔는데 먹어보니 맛도 좋고 섬유질이 많아서 시장바구니를 가지고 다니며 많이 땄다. 뽕잎 나물을 먹으며 죽으면 실크가 나올 거라며 웃었다. 자연에서 얻은 구기자 순, 취나물, 뽕잎, 오가피, 미나리들을 삶아서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조금씩 내어서 먹으며 선물을 내어 준 자연에게 감사했다. 

시골은 계절이 변할 때마다 우리에게 뭔가를 주는 것 같다. 6월초가 되니 지천으로 있는 뽕나무에 까만 오디가 달려있다. 그냥 보고 지나쳤는데 굵은 오디가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플라스틱 통을 가지고 가서 조금씩 따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통이 커졌다. 아무도 따지 않는 오디를 열심히 땄다. 아까운 오디가 땅에 떨어져 버려지는 것이 안타까워 통을 더 많이 가지고 오게 되었다. 

도회지 살 때 시골 할머니들이 작은 종지에 딸기며 오디를 팔아도 무관심했다. 오디는 입에 물이 들어 싫었고 딸기는 씨가 씹히는 것이 별로였다. 이렇게 힘들게 따는 것인 줄 몰랐다. 무엇이든 돈으로 사긴 쉽다. 한 알 한 알 따서 정성들여 딴 것인 줄을 도시사람들이 안다면 값을 깎아 달라거나 더 달라지는 못할 거란 생각이 든다. 

안토시아닌 색소를 띠어 노화 방지와 시력이 개선되고, 비타민E가 많아 항산화효과가 있다는 오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는 사람이 있어 정성들여 딴 오디 한 통을 주고 왔다. 주는 기쁨이 받는 기쁨보다 배가 된다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날아 갈 것 같다. 

오디가 끝물일 무렵에 빨간 산딸기가 방긋 웃는다. 빨간 산딸기를 보면 내 손은 자동으로 그쪽으로 간다. 색깔이 얼마나 예쁜지 사진도 찍고 따기도 한다. 어렸을 때도 따먹지 않던 딸기다. 이곳 사람들은 농사일에 바빠서인지 오디나 산딸기를 따지 않는다. 우리만이 자연의 혜택을 맘껏 누리는 것 같다.

밭 곳곳에 꽂아 둔 깃발이 눈에 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에 산업단지가 생긴다고 한다. 평화롭고 한적한 이곳의 농토는 사라질 것이다. 농산물로 가득했던 이곳은 산업단지가 될 것이다. 내년에는 이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시골 구석구석에 공장들이 많다. 내가 산책하는 곳에도 공장 건물이 있다. 가동 중이라면 괜찮겠지만 문 닫은 공장이 곳곳에 보인다. 그럼에도 또 산업단지를 만든다는 것을 발전이라 할 수 있을까. 자연을 조금씩 잠식하면서 공장이 꼭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자연에게 받는 혜택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야 한다. 이른 아침 차를 몰다보면 고라니, 고양이, 개들의 사체가 섬뜩하게 널브러져 있다. 자연훼손으로 먹을 것과 갈 곳을 찾다가 짐승들이 로드 킬을 당한 것이다. 누구든 자연의 소중함을 잊으면 안 된다. 줄어드는 자연이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것임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큰 것을 바라지 않고 작은 것에 만족하는 삶이 가장 큰 행복인 것 같다. 남편은 이런 곳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사는 우리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란다. 백수이기에 이런 호사를 누리며 사는 것 같다.

좋아하는 오디를 새들에게 양보하기로 했다. 하얀 구름이 흘러가는 파란 하늘을 보며 행복을 가득 안은 백수는 휘파람을 불며 산책을 한다.

이혜숙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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