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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금꿩의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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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7.10 17:09
  • 기자명 By. 충청신문
변정순음성수필문학회 회장
변정순음성수필문학회 회장

이른 아침 잡초를 뽑다 금꿩의 다리와 마주했다. 금꿩의 다리는 꿩의 다리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화려함도 까투리보다 장기를 닮은 듯하다. 훤칠하게 크고 긴 다리에는 잔잔한 보라 꽃이 흩어지듯 핀 모습이 황홀하다. 가냘프고 여리여리 한 금꿩의 다리가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흔들리고 있다. 보라 꽃잎만 있는 것 같았는데 자세히 보니 노란 꽃술이 그 속에서 나풀거린다. 그래서 앞에 ‘금’ 자를 붙였나 보다. 꽃으로 착각하고 있는 보랏빛도 꽃잎이 아닌 꽃받침이었다. 손톱만한 꽃망울이 오밀조밀 눈부신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보면 볼수록 매력적이면서 고품격을 가진 야생화다. 지적임과 우아함이 하나하나의 꽃에서 눈이 떼지 못하게 홀리고 있다. 이 꽃을 보고 있노라니 팔순이 되셔도 여전히 지성과 품성이 좋으신 반 선생님이 떠오른다. 

지지난달, 스승이신 반 선생님께서 조경희 수필문학상 수상을 하셔서 시상식에 다녀왔다. 조경희 수필문학상은 수필가 조경희 선생의 수필문학정신을 기리고 한국수필가들의 사기진작과 창작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제정된 상으로 한국수필 문학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인정되는 중견. 원로 수필가를 선정 시상하고 있다. 올해는 수필가 반 선생님이 이 상에 선정되었다. 모시한복을 곱게 차려입으시고 시상대에 서신 선생님은 우아함과 품위 그 자체였다.

“간절하게 글쓰기를 하고 싶었고 그 간절함 속에는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데 세상은 멀어져 가고 생명의 정체성마저 흔들릴 때 수필은 구원의 손길이었다. 글을 쓰는 동안 살아야 할 이유가 분명해지고 제안의 상처가 치유되는 신기한 체험을 하며 수필을 사랑하게 되었다. 세상은 시적인 에스프리를 요구할 때도 있고 소설적인 무대이기도 하지만 소소한 일상을 사랑하며 맑고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수필적 이상이 좋다“고 하신 선생님의 수상 소감이 큰 울림이 되었다.

그렇다. 음성이 고향인 선생님은 시골에서 초등교사로 어린이를 지도하셨고 사과농사를 짓는 농부였다. 몇 년을 빼고는 고향자연에 묻히면서 가슴속에 묻어둔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셨고 이곳에서 문학의 뿌리를 내리면서 지금도 후배들 문학지도에 힘쓰고 계신다. 얼마동안 서울에서 살다 고향으로 내려와 ‘창작의 밀실, 수필의 자궁’인 농막을 짓고 창작에 전념하시는 선생님은 진성 순수서정 평화주의의 실현자다. 작품세계 또한 아름다우면서도 실로 놀라운 휴머니티가 넘쳐난다. 

수많은 작품 중 내가 젤 좋아하는 ‘이쁘지도 않은 것이’이란 작품이 있다. 잡초를 뽑다 아주 작은 꽃다지를 보고 “이쁘지도 않은 것이 어째서 이렇게 가슴을 흔드는가. 풀꽃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강물 같은 평화가 넘친다. 서울이라는 대하에서 부초처럼 부유하던 내가 양지 한 뼘 얻어서 내려앉은 기분이랄까. 내친김에 밭고랑에 벌렁 누워 본다. 딴 세상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던 꽃은 미미하고 자잔 하다고 느꼈는데 누워서 보는 꽃들은 모두가 의젓하고 출중하다. 그래, 사람이 땅처럼 겸손하다면 세상 모두가 은혜를 베풀고 있음을 알겠구나. 세상에는 크지 않아도 아름다운 삶이 있고, 힘세지 않아도 지혜로운 사람들이 있으며 연약해도 착한 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크고 화려한 것만, 잘라고 높은 것만 찾아 헤매니 고달플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나는 지금 이쁘진 않지만 사랑스럽기 짝이 없는 풀 꽃 속에서 새로운 우주가 열리고 있음을 보고 있다.”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이 아주 작은 풀꽃도 뽑지 않고 미끈한 게 하나 없이 다 꼬부라진 못난 것들, 이쁘지 않은 게 좋은 세상이라고 하신다. 

선생님을 만난 지 15년 세월이 흘렀다. 선생님 강의 시간마다 제자들은 선배 작가로 어떤 모습일까,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선생의 한마디 한마디를 귀에 담으려 모두들 눈망울을 반짝였다. 이런 제자들에게 소박하게 자신을 드러냈다. "수필은 옷을 벗는 것과 같아. 어디까지 벗느냐는 작가가 선택하는 거지. 다 벗으면 매력 없으니까 아른아른하게 벗는 것도 방법이지. 상처를 드러냈을 때 독자들로부터 힘을 받았다” 는 반 선생님은 내 아픔을 털어 다른 이를 위로할 수 있었기에 벗음에 대한 겁이 없어졌다고 한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은 얼마나 가벼워졌는지 모르겠다. 모쪼록 비상하는 날개 짓 같은 금꿩의 노란 수술처럼 늘 비상하는 선생님이 되시길 기도드린다.

새벽이슬에 살포시 젖은 보랏빛 금꿩의 다리가 고귀하고 더욱 우아한 모습이다.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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