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경고판
[세상읽기] 경고판
  • 충청신문
  • 승인 2018.07.11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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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구수필가
이종구수필가

땅거미가 질 무렵 뜨거운 햇살을 피해 유등천변을 산책한다. 시간이 여유 있을 때는 인근의 오량산이나, 좀 먼 보문산도 올라본다. 7월의 햇살을 머금은 나무와 풀들이 제법 열매를 키우고 있다. 솔방울도 틈실해졌고, 밤송이도 굵직해졌다. 상수리도 통통해졌다. 인근 밭에는 고추도 빨갛게 익어가고….


산책할 때 마다 느끼는 것이 하나 있다. 도대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행정력이 과연 우리 주변 곳곳에 얼마나 발휘하는가 하는 것이다. 하천변, 등산로 입구 등에서 쉽게 눈에 뜨이는 ‘경고판’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하천 둑이나 산 비탈을 일구어 농작물을 경작하고 있는 곳에 서 있는 경고문이나 안내문에는 한결 같이 ‘00법 00조’에 의거 ‘경작 행위 금지, 시설물 훼손 금지’ 등의 법 조문과 이에 대한 처벌(실형이나 벌과금 부과)을 기재하고 있다. 또한 기한을 정하여 원상 복구하지 않으면 행정기관 임의로 처리하겠다는 글귀가 써 있다. 그런데 2~3년이 지나도, 심지어는 4~5년이 지나도 경고판은 경고판대로, 농작물은 농작물대로 서로 경쟁하듯 서 있다. 달리진 것은 경고판이 뽑혀 내 팽개쳐 있거나 훼손되어 볼 품 없이 되었다는 것뿐이다. 심하게는 4~50년 된 참나무가 베어져 있고, 나무 그늘이 농작물을 잘 자라지 못하게 한다는 이유로 슬금슬금 나무 밑둥에 톱질을 해 놓아 시름시름 말라 죽어가게 한 곳도 있다. 


없는 살림에 약간의 농작물을 경작하여 먹고 살겠다는 주민들을 비방하고 싶지는 않다. 오죽하면 그런 곳을 찾아 몇 그루 고구마, 옥수수, 파, 마늘을 심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려되는 것은 그렇게 농작물을 심어 가꾸다 보니 그 고구마 줄기, 콩깍지, 뽑혀진 잡초 더미와 채소를 다듬은 쓰레기, 농업용 폐비닐, 각종 나뭇가지(지지대) 등이 주변 배수로에 쌓이고, 물길을 막아 큰 비라도 오면 물이 넘쳐 주변 땅을 침식하게 되고, 또한 녹생토공법으로 토사 유출을 방지해 놓은 부분의 풀과 나무를 뽑아 밭으로 만들어 토사 유출로 인한 피해가 커진다는 우려이다. 실제로 몇 년 전, 산 비탈을 깎아 만든 경작지의 토사가 유출되어 대전 서구 오량터널로 다량의 토사와 쓰레기가 휩쓸려 들어와 위험한 경우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농작물 뒷목이 배수로에 쌓여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쓰레기 장으로 오인하여 각종 쓰레기를 몰래 버리게 되어 도시 미관상으로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봄철에는 담배꽁초라도 버리면 산불로 번질 위험도 내재하고 있다. 


문제는 행정력의 약화이거나 결말이 없는 전시 효과적 행정이다. 우연한 기회에 경작하는 주민을 만났다. “아저씨, 여기 경고판이 있는데 이렇게 농사를 지어도 괜찮아요?”, “아니 뭐, 먹고 살겠다는데 누가 시비 걸어. 그리고 이 딴 것, 세워 놓아도 세울 때 뿐여. 저 거 봐. 2015년에 세웠잖어? 그 뒤도 계속 농사짓는데, 아무도(행정담당자) 안 와 봐. 그래서 그냥 짓는 겨.” 그저 경고판과 안내판만 세우는 것은 예산 낭비가 아닌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녹생토공법으로 방비한 비탈면과 둔덕은 그 또한 예산 낭비가 아닌가?


행정을 무시하는 주민들, 과연 그 책임은 위법을 한 주민들인가? 아니면 경고판만 세우는 행정기관인가? 국가의 질서는 법이 집행될 때 지켜지고 그 가치를 인정하게 된다. 지난 6월 13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도 많은 출마자들이 선거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거나 기소되고 있다. 지방선거뿐이 아니다. 우리는 늘 선거를 치르면서 항상 뒤끝이 좋지 않음을 보아왔다. 특히 법을 제정하는 의원들의 선거법 위반 사례를 자주 보아왔다. 그래서 그 위반 사례가 당연히 있는 일처럼 느껴지고 있다. 심각하게 받아 들여지지 않는 무뎌진 판단이 되어 버린 것 같다.


항상 큰 사고가 나면 ‘인재’라는 말을 한다. 미리 방비하면 될 것을 하지 않았기에 생기는 일이다. 인재는 당장의 이기적 행태와 게으름, 그리고 규칙을 무시하는 불감증의 산물이다. 벌써 장마의 폭우로 곳곳에 침수 피해가 났다. 또 태풍도 올 것이라고 기상청은 예보하고 있다. 미리 대비하고 처리해서 더 큰 화를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노자는 지도자를 구분하여 ‘최고 지도자는 존재만 있는자, 다음은 백성을 가까이 하고 칭찬하는자, 다음은 백성들이 두려워 하는자, 그리고 좋지 못한 지도자는 백성들에게 업신여김을 받는자(太上 不知有之 其次 親而譽之 其次 畏 之 其次 悔之)’라고 했다. 이제 지방정부도 새로운 진영을 갖추고 출범했다. 행정이 최고는 못되더라도 업신여김을 받아서는 안 될 것 같다. 이전처럼 “세워 놓을 때 뿐여”라는 말 대신 “세우면 집행된다”라는 강력한 행정력이 발휘되는 힘 있는, 실천하는 지방정부의 행정을 기대해 본다.

이종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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