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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등나무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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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7.16 16:41
  • 기자명 By. 충청신문
한기연 시인. 평생교육강사
한기연 시인. 평생교육강사

도심 속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등나무 아래에 앉았다. 모처럼 기다림이 주는 휴식을 작은 숲속에서 즐기고 있다.

평소라면 늦잠을 자고 있을 일요일이지만, 일정이 있어서 이른 새벽에 눈을 떴다. 외국인 근로자들을 인솔하고 한국어 능력시험을 보러 가야 하기에 잠을 설쳤다. 수능시험만큼이나 엄격하게 치러지는 시험이라 시간 맞춰 시험장에 들어가야 한다. 다행히 여유 있게 시험이 있는 장소인 충북대학교에 도착했다. 아쉽게도 한 명은 연락이 되지 않고, 한 명은 화상 입은 손이 아파서 오지 못했다.

교실마다 확인해서 들여보내고, 주의사항을 여러 번 일러 준 다음에 카페에서 책을 볼 요량으로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너무 이른 시간이라 편의점 말고는 문을 연 카페를 찾을 수 없었다. 학교로 다시 돌아와 교정을 헤매다 작은 산책로를 발견했고, 나무계단을 올라가니 등나무가 있었다. 

일요일마다 대소에 있는 음성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한지 1년이 되어 간다. 1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다문화센터에서 결혼이주여성을 대상으로 한국어교육을 하고 있지만, 외국인 근로자는 처음이었다. 수업내용이나 사용어휘에서 조금은 차이가 있었지만, 가장 큰 차이는 참여 인원과 수업을 꼭 받아야 하는 절실함이었다. 

센터에서는 법무부 사회통합수업을 운영하고 있는데, 비자연장을 하려면 단계에 맞는 수업을 이수하는 게 필요하다. 내가 맡고 있는 반은 사회통합수업에 참여하지 못하거나 처음 온 학생들이다. 처음에는 40여명 정도였으나 의자를 놓을 공간도 없을 정도로 늘어나서 수업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분반을 할 공간도 여의치 않아서 궁여지책으로 시간을 나누어 수업을 하게 되었다.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의 처음 시작은 미약했다. 지금의 센터장님이 사비를 들여 운영하고 한국어 교육과 상담, 공공기관의 장소 협조 등 선뜻 나서서 봉사해 주신 분들이 계셨다. 지인을 통해 근로자를 위한 센터의 노력과 열정을 전해 들었을 뿐이지만 존경스러움과 감탄이 우러나왔다. 아무 대가도 없이 타 국민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열정을 아낌없이 쏟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을 포기 없이 해 온 지금은 일요일에만 250여명 정도가 센터를 이용하고 있다. 대소행정복지센터 신청사 3층으로 옮겨 교육환경도 훨씬 나아졌다. 

음성군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8700여 명으로 도내 등록 외국인의 24%에 해당될 정도로 외국인 밀집도가 높다고 한다. 저녁 나절 버스 터미널 주변에 모여 있는 외국인을 보면 위협을 느껴 피해 간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가끔 듣기도 했다. 시골이다 보니 외부인에 대한 거부감이 외국인에게는 더 크게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반감을 줄이고 지역 주민과 친근하게 다가서기 위해 지역 행사에도 적극 참여하고 거리 청소를 하면서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일시적인 거주지만 외국인근로자도 우리 지역 주민이고 산업경제의 일선에서 가장 많은 땀을 흘리는 일꾼임은 분명하다. 한국 사람은 기피하는 3D 업종뿐 아니라 농사일과 식당에서의 허드렛일도 마다않고 일한다. 욜로족이 늘고 있어 금요일부터 주말을 즐기는 우리나라 사람들과 달리 외국인 근로자는 토요일에 회사에 출근하는 경우가 많았다. 야근을 하고 수업에 와서 꾸벅 꾸벅 졸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도 했다. 

지금 나에게 그늘이 되어 준 등나무처럼, 센터가 중심이 되어 그들에게 든든한 쉼터가 되어 줄 것이다. 거기에 그들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들어 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한국에서의 생활이 결코 고단하지 않으리라.

한기연 시인. 평생교육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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