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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포럼] 무성영화와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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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7.19 15:30
  • 기자명 By. 충청신문
박상희 피아니스트
박상희 피아니스트

얼마 전 흥미로운 영화제에 다녀왔다. 철도를 소재로 한 도시의 태동과 번영을 근대와 현재를 엮어가며 마련한 철도 영화제 ‘사(絲), 이(異) 잇다’. 

그 중 한 프로그램은 옛 충남도청사에서 열렸는데, 그곳에서 무성영화를 상영한다고 했다. 1930년대의 근현대사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그 공간에서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를 상영하던 그 시절의 모습을 재현한다는데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침 영화도 1926년 미국에서 개봉되었던 버스턴 키튼의 영화 ‘제너럴(The General)’이다.

도청사 뒷마당 야외에서 열린 영화제는 어스름한 기운이 드리우자 시작되었다. 에어스크린에 쏘인 영상이 선명해지면서 살짝 더운 바람이 스치는 것이 더욱 현장감을 고취시켰다. 영화 제목이 뜨면서부터 피아니스트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각종 영화 배급사들의 전용 음악 따윈 없었다. 제목의 영상부터 피아니스트는 분위기를 주도해갔다. 영화 장면이 바뀔 때는 물론이고, 배우의 동작과 속도에 따라서도 음악은 완급을 조절해가며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극을 이끌었다. 무려 110분이나 되는 길이의 영화를 피아니스트 혼자서.

영화음악의 시초라고 보는 이 무성영화의 시대에서 피아노의 역할은 그 출발은 거대한 의도는 없었다. 1930년대 영화음악에 대한 이론서를 쓴 커트 런던의 말에 따르면 당시 음악은 ‘거대한 예술적 욕망이 없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영사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러워 관객들의 감상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투입했다는 것이다. 피아니스트는 그렇게 소음과 영화와의 간극을 메우기 위하여 어떤 소리를 생산해내고 있었다. 영화 상영에 앞서 이 날의 피아니스트는 관객들에게 '많이 즐기고 웃어주시면 연주하는데 힘이 많이 날 것 같다'라는 주문을 했다.

커트 런던은 또 다른 의미로 무성영화에서의 음악의 역할을 얘기하고 있다. 사람들은 일반적인 영상이나 행위를 보는 것만으로 예술적 해석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며, 음악이 있을 때 이해도가 확실히 높아진다는 것이었다. 

뤼미에르 형제는 당시의 영상의 질이 그다지 좋지 않아 기괴해 보일 수도 있는 단점을 음악의 힘을 빌려 채우려고 했다. 음악 없이 보는 영화, 과연 재미있을까?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사용하는 영화 음악들이 주는 역설적인 효과들에서 보듯이 기쁨이나 슬픔, 분노를 일으키는 것도 사실 영상보다는 음악이 힘이었던 것인가.

다시 무성영화의 시절의, 앞에 설명한 모든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는 피아니스트에게로 돌아오자.

여러 가지 편성의 음악을 쓸 수도 있었으나 비용적인 면을 고려할 때 피아니스트 한 명을 고용하는 것이 경제적이어서 주로 피아니스트를 선호했다고 한다. 일정 수준 이상의 연주자를 고용하다보니 자연히 클래식 작품들을 모티브로 영화 음악을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는 영화가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랙타임과 같은 재즈 음악으로의 변화를 겪는다. 당시 영화의 흥행과 함께 피아니스트라는 직업도 무수히 많아졌다고 한다.

오늘날의 영화음악처럼 그 영화를 위하여 음악 작업을 하던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떤 피아니스트를 섭외하는지에 따라 영화의 감상이 매우 달라졌을 것 같다.

사실 이 무성영화를 관람하기 전에는 피아노가 배경음악의 역할에 지나지 않을 것이란 상상을 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가벼운 역할에 그치는, 무대의 단순한 오브제가 될 것이라 생각했던 내게 이상한 편견을 갖고 있음을 깨닫게 했다. 프로코피에프와 드뷔시, 베토벤 등의 작품에서 나온 모티브들의 연결이 기발하고 예기치 못한 즐거움을 주었다. 

다시 찾아본 영화에서는 다른 음악이 입혀져 비슷하면서도 색다른 의미로 해석이 되었다. 마치 한 작품을 두고도 연주자에 따라 해석이 달리 표현되듯, 무성영화에서의 음악은 연주자의 역량에 따라 의미 전달이 다양하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오늘날 영화음악은 그 영화를 대변하는 역할이 강하다면, 어느 해석에도 구애받지 않은 자유로움을 주는 무성영화의 음악이 있다. 기존의 영화 감상 방식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무성영화를 추천해본다.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분위기를 끌어가고, 오락으로서의 역할까지 모든 유희를 이끌었던 당시의 모든 위대한 피아니스트에게 존경을 표하며, 피아노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피아노라는 악기에게 요구되는 어떤 암묵적인 역할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박상희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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