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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촌놈들이라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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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7.23 16:19
  • 기자명 By. 충청신문
이혜숙수필가
이혜숙수필가

호수에 비친 녹음이 더위를 식혀준다. 아니 촌놈들의 우정에 더위도 물러갔나 보다. 아름다운 자연에서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모든 힘듦과 고달픔도 다 날려준다. 실컷 웃고 떠들 수 있음에 감사한 하루다. 

격식을 차릴 필요도 없고 민낯이어도 상관없는 깨복쟁이 친구들. 이런 시간을 얼마나 더 가질 수 있을까. 다들 삶에 바쁘다보니 만남도 쉽지 않다. 회장과 총무를 맡은 친구의 열정이 있어 이렇게 좋은 시간을 갖게 된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참석하는 것뿐이지만 그들이 있어 행복하고 감사하다.

봄에는 자주 내리던 비가 여름이 되어서 감감무소식이다. 가뭄이 계속되고 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숨을 쉬기 어려울 만큼 가슴이 답답하다. 산책길은 조심조심 걷지 않으면 흙먼지가 풀풀거려 뽀얀 먼지를 뒤집어 써야 할 정도다. 이런 더위도 개의치 않고 촌놈들이 만났다.

짙은 녹음 위로 태양이 지구를 태울 것 같던 여름의 어느 날. 어릴 적 친구들이 만났다. 초등학교 친구들이다. 사는 게 바빠 만남이 소원했는데 회장, 총무가 된 친구가 나이 들수록 우정을 다져야 한다며 주선한 것이다.
청주에 사는 친구들이 버스를 대절해서 서울로 왔다. 서울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파주에 있는 마장호수 위를 가르는 출렁다리를 갔다. 휴일이라 그런지 차는 꼬리에 꼬리를 물어 도로는 물론 주차장도 만원이다. 

어렵사리 도착했는데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다. 올 3월에 개통했다는데 출렁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이 비켜가기 힘들 정도로 많다. 소문이 빠르기도 하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220m나 되는 다리는 많은 관광객으로 꽉 차 있다. 녹음이 우거진 호수주변에 산책로까지 있다. 호수에 비친 자연과 함께 걷고 싶었지만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다.

청주에서 온 친구들이 먹거리를 잔뜩 싣고 왔다. 각박하고 메마른 인정 속에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쉽지 않는 일이다. 친구들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이런 정을 싣고 왔으리라. 정성을 다해 준비한 사랑을 먹으며 촌놈들이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서울 친구 하나는 우리에게 줄 모자를 준비해서 하나씩 머리에 씌어준다. 모자를 사서 액세서리를 손수 달아 예쁘게 만들어 왔다. 촌놈들이라 그런지 정을 나누는 마음은 늙어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반찬까지 싸 들고 온 친구의 정성 가득한 것은 음식을 먹은 것이 아니라 우정을 먹은 것이다.

서로를 위해 준비하고 마음을 쓰는 것이 어디 쉬운가. 회장은 큰마음을 내어 친구들의 화합을 주도하고 오지 못한 친구도 그 나름대로의 정성을 보탠다. 각박하다는 세상에서 서로를 위해주는 촌놈 친구들은 얼굴만 봐도 기쁘다고 말하며 가는 시간을 아쉬워한다.

남쪽에 살 때는 자주 왔는데 음성에 살고부터 친구들과 만날 때 다른 일이 겹치면 불참했다. 이번에도 여러 가지 일이 겹치는데 이러다가 친구들과 점점 멀어질 것 같아 다 팽개치고 온 것이다.

도회지 사람들은 초등학교 동창회를 하지 않는단다. 시골의 작은 학교. 6년을 같은 반에서 함께한 우리들. 그래서일까. 사연도 많고 추억도 많은 우리들은 정도 남달랐다. 지금도 추억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즐거워한다.

지금은 폐교되어 무슨 수련원이 되어있는 시골학교. 일 년에 한 번은 총 동문 체육대회를 해서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는 장이 된다. 잔디밭이 된 교정을 거닐며 어릴 적 그때로 돌아가는 시간도 갖는다. 지금도 남아있는 등하교 때 다니던 오솔길이 걸으며 책보를 든 작은 여학생을 만나기도 한다. 이런 기억들을 함께 하는 촌놈들이 오늘 한자리에서 맘껏 웃으며 진한 우정을 다진다.

시간은 왜 그리 빨리 가는지. 좀 전에 만난 것 같은데 해가 뉘엿거린다. 다시 만나겠지만 헤어짐이 아쉬워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작별을 한다. 촌놈들만이 만들 수 있는 아름다운 시간. 서로를 아끼며 서로를 위해 베푸는 마음. 오로지 촌놈들이기에 가능한 것 같다. 나보다 너를 먼저 생각하는 촌놈들.

주변을 살피고 아끼는 마음으로 살며 모두 건강해서 만남의 자리가 자주 있길 바라본다. 인간이 아름다운 것은 서로를 위하고 베푸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사람 냄새나는 친구들이 촌놈들이어서 참 좋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길가의 야생화도 방긋 웃으며 인사를 한다.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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