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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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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7.31 16:26
  • 기자명 By. 충청신문
강희진음성예총 부회장
강희진음성예총 부회장

대학을 졸업하고 3년, 취업준비생으로 마음고생을 하던 아이가 드디어 취업을 했다. 사실 말은 못하고 있었지만 오랜 체증이 내려 간듯하고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는데 당사자인 딸은 오죽할까? 모든 사람들이 취업이 어렵다 해도 우리 딸 만큼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한해가 지나고 또 다음 해가 되자 아이는 불안해 하기 시작했고 나도 내색은 못했지만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3년째인 올해로 접어들자 아이는 하고 있던 공부에 자신이 없었는지 다른 쪽으로도 학원을 다니며 모든 일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온 집안 식구가 딸아이에게 상처 받는 말이라도 할까 조심 또 조심하며 보냈다. 

취업이 결정되고 내려온 딸과 와인을 마셨다. 사실 아이가 취업하면 마시겠다고 아이 졸업식에 갔다가 달달한 아이스와인을 딸과 같이 구입했었다. 그런데 취업이 늦어지자 혹시 이 와인을 보고도 상심할까 한쪽 귀퉁이에 숨겨두었던 와인이었다. 가족과 축하 와인을 마시며 이제 취업을 하면 쉽게 함께 하지 못할 것 같아 여행 계획을 세웠다. 처음에는 아이들과 해외로 휴가 일정을 잡았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떠나 어디를 가든 지구촌도 더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뉴스를 접했고 여행이 고행이 될 것 같았다. 교육 날짜가 정해져서 그 전에 편하게 쉬게 해주고 싶어 ‘호캉스’(호텔에서 즐기는 휴가)로 결정을 했다.

첫째 날은 짐을 풀고 점심을 먹고 서점에 들려 각자 읽고 싶은 책 3권씩을 사서 들어왔다. 그리고 저녁시간에 예약한 영화를 보러가기 전까지 시원한 호텔방에서 독서삼매에 빠졌다. 다음날, 호텔 근처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 11대왕 중종이 안장된 정릉이 있었다. 호텔에서 내려다보니 너무 아름다워 산책 겸 오전 10시 이용시간에 맞춰 올라가 보았다. 5분도 안되어 후회하기 시작 했고 왕릉 근처까지 갔다가 보는 것을 포기하고 땀이 범벅이 된 채 호텔로 돌아왔다. 유사 이래 최고의 더위로 40도를 넘겼다는 뉴스, 어미닭을 대신해서 더위가 알을 품어 베란다에서 병아리가 깨어 나왔다는 소식 등 더위로 인한 새로운 소식들이 연일 포털 사이트에 1순위로 검색되고 있다. 그 더위를 내가 직접 마주한 느낌이었다. 정릉행으로 녹초가 되어 호텔방에서 쉬다가 요즈음 인기를 얻고 있는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을 봤다. 

영국 출신의 여성작가 메리 셀리(Mary Shelley)의 원작 소설을 우리나라에서 만든 창작뮤지컬이라 더 의미가 있었다. 재미있다는 입소문을 듣고 예매했는데 한밤의 더위를 시켜주는 더 할 나위 없는 재미를 선사했다. 뮤지컬 시작 전 여유 있게 일찍 도착해서 휴게실에서 차를 마시며 기다렸다. 총 1700여석이 매진되었다고 한다. 좋은 공연을 보겠다고 모여 드는 사람들을 보니 나처럼 큰맘 먹고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서울사람들이 부러웠다. 원하는 많은 것을 해결 할 수 있으니 서울 인구가 계속 증가 하나보다.

관객들을 살펴보니 단연 여성관객이 많았다. 20대 30대 젊은 층은 연인들이 많았고, 아주 드물게 부부가 온 경우도 있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남학생들은 엄마 의지로 데리고 온 듯 수줍게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랑 공연을 보러 왔던 남학생은 커서 엄마가 아닌 여자 친구와 같이 와 있는 것이 아이러니다. 친구끼리(여성) 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단연코 가장 많은 커플은 딸과 엄마였다. 여기저기 다정한 모녀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니 요즈음 딸이 없으면 ‘목메달’이라고 한다는 시쳇말을 실감했다. 50, 60대 엄마들에게 문화적인 것을 같이 향유하고 싶은 딸들의 배려로 보였다.

예전 어렸을 적에 할머니가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할머니는 가끔 “배워서 남 주나? 딸 낳아서 남 주지” 하는 남아선호 사상적 발언을 하셨는데 그 시대의 여성은 시집을 가면 시댁으로 보내는 것으로 생각을 했었던 것이다. 이런 시대에 태어나지 않는 우리 딸은 참 다행한 일이지만 그래도 아직 여성에 대한 편견과 싸우며 살아가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내 딸의 딸들은 더 좋은 세상에서 내 딸과 나란히 성장하기를 바라본다.

2박 3일의 짧은 호캉스는 호사스럽게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돌아갈 집이 없으면 여행이 아니라고 한다. 아무리 호텔이 좋아도 돌아와 안방 침대에 누우니 행복하다. 여전히 더워서 에어컨을 켜야 하나 선풍기로 견딜까 하는 현실적 고민을 하지만 그래도 가장 편한 것은 우리 집이다.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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