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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amor f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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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8.06 15:37
  • 기자명 By. 충청신문
이혜숙수필가
이혜숙수필가

몇 년을 배운 사람이야 조금만 연습하면 불 수 있지만 나 같은 초보가 나갈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대충 연습만 하고 지내서 출연하지 못 할 거라고 생각해서 대충 출석만 했다. 모임 회장은 잘하든지 못하든지 다 함께 하자고 한다. 

초급반을 위해 쉬운 곡을 선택했단다. ‘머나먼 고향’ ‘홀로아리랑’은 초급반을 위한 곡목이고 ‘사랑은 아무나하나’ ‘아모르파티’는 중급반이 할 거라고 했다. 그런데 두곡을 연주하고 나면 서 있어야 하는지 내려와야 하는지 걱정이 되었다.

주민자치 프로그램에서 색소폰을 배운지 8개월 정도 되었다. 말이 8개월이지 수업하는 날만 색소폰을 열고는 집에 와서는 고이 모셔두었다. 굳이 배우고 싶어서 한 것도 아니고 남편과 함께 하기 위해 하는 것이라서 인지 열정도 없었다.

남편은 오래 전부터 혼자 독학으로 배우기 시작했는데 옆에서 불면 시끄럽다고 할 정도로 관심도 없었다. 알토 색소폰을 오래 불다보니 테너 색소폰이 갖고 싶었나보다. 지나가는 말로 비치는 남편에게 테너 색소폰을 사 주었다. 알토색소폰이 남았다. 팔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그냥 처박아 두기도 뭐해서 배우기로 하고는 마음이 정해지지 않아 시간만 보냈다.

남편이 집으로 오고 같이 하자고 해서 배우기 시작했다. 6개월 정도는 가방만 들고 학교에 가는 학생처럼 색소폰만 들고 다녔다. 그러던 중 면사무소가 새 청사로 이사하고 열린 음악회 때 색소폰 연주회를 해야 하는데 다 같이 불어야 한다고 했다. 이래선 안 되는데 어떡하나. 두 곡은 그런대로 불수가 있는데 중급반이 연주할 때 중간에 내려와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중간에 내려오면 어색할 것도 같고 나도 할 수 있을 거라는 오기도 생겼다. 연습하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처음에는 원 템포로 색소폰을 불었다.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는다. 손가락이 제대로 될 때까지는 템포를 늦추었다가 숙달 된 것 같으면 원 템포로 바꾸어 연습을 했다. 안 되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사랑은 아무나 하나’를 소화 할 수 있게 되었다. 노력해서 성공하니 재미도 붙고 기쁨도 배가 되었다.

문제는 ‘아모르파티’다. 템포가 빠르고 처음 접하는 노래라서 배우려고 생각도 하지 않았던 곡이다. 가수의 멋진 가창력을 보면서 나도 저이처럼 노래도 잘 부르고 색소폰도 잘 불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끈기가 대단한 남편은 열심히 연습을 한다. 남편도 하는데 나라고 못하랴. 하루 만에 해 낼 거라는 오기로 아침부터 연습에 돌입했다. 자꾸 틀리다 보니 머리도 지끈거렸다. 이걸 왜 해야 하는지 귀찮기도 하고 하기 싫기도 했다. 

머리를 흔들며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전 이장님이다. 빨강지팡이 교육가는 날이란다. 속으론 안 갔으면 했는데 차를 집 앞에 대고 가자는데 별 수 있나. 오늘 안에 끝내려고 했는데….

다시 색소폰을 잡았다. 오늘 안에 되지 않으면 잠도 안 잘 작정으로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남편은 쉬었다 하라고 한다. 한 번 마음먹으면 될 때가지 하는 성격이라 색소폰을 놓을 수가 없다. 처음에는 느리게 불며 곡을 익혔다. 조금씩 빠르게 연습했다. 저녁이 되어서야 어설프지만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서 있지 않고 색소폰을 불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인다.

‘아모르 파티(Amor Fati)’에서 Amore는 '사랑'이라는 뜻이다. Fate는 운명을 말한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주장했다고 한다. 아모르파티는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이란다. 그런데 나는 왜 운명적 사랑을 하라는 소리로 들리는 걸까. 운명적 사랑을 하고 싶은가 보다.

인생이 아름답기만 하다면 운명을 사랑하기 쉬울 텐데….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에 운명이니까 사랑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까. 화를 내거나 원망을 할 것 같다.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꼬일 때면 나만 그런 것 같아 슬프고 울고 싶어질 것이다. 나 역시 자주 그랬으니까. 

운명을 사랑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늙어가면서도 지기 싫어하는 오기는 죽지 않는다.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 하는데 왜 고집만 늘어가는 지 모르겠다. 딸에게 고집 좀 꺾으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럴 때마다 엄마가 살아가는 힘이라는 말로 자기 합리화를 했다.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도 쉽지가 않다. 내일은 될 때까지 색소폰과 놀아야 할 것 같다. 아모르파티를 배우며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며 사는 행복한 삶이길 기원해 본다.

열린 음악회에서 멋지게 색소폰을 불어 배움에 대한 완성의 맛을 보리라. ‘Amor Fati’를 배우다가 운명도 사랑하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달을 것 같다.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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