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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위안부는 나”… 이 고백이 위안소 유적지 세웠다

난징이제항위안소유적진열관을 가다…“우리는 진정 위안부 할머니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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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8.13 19:08
  • 기자명 By. 정완영 기자
난징이제항위안소유적진열관 마당. 사진 왼쪽 임산부가 박영심 할머니를 형상화한 동상으로 마당에 비가 촉촉히 내리고 있다.
난징이제항위안소유적진열관 마당. 사진 왼쪽 임산부가 박영심 할머니를 형상화한 동상으로 마당에 비가 촉촉히 내리고 있다.

 

 

박영심 할머니 자료사진.
박영심 할머니 자료사진.

[충청신문=난징] 정완영 기자 = 이 사진을 아십니까?

‘위안부’ 하면 대표적인 사진으로 보여주는 사진 한 장.

주인공은 지금은 고인이 된 박영심 할머니.

자신이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털어놓으면서 세계적으로 위안부 문제의 도화선이 됐다.

이 사진의 오른쪽 끝에 있는 임산부가 “바로 나”였다고 증언하면서 시작이 됐다.

박영심 할머니가 위안부로 끌려간 것은 1938년 꽃다운 나이인 17살 때다.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와 탄광 인부로 일하는 아버지 슬하에서 자라다가 14살 때 평안남도 남포시 후포동의 한 양복점의 식모로 팔려나갔다.

그러던 1938년 3월 일본 순사가 나타나 “좋은 일자리가 있으니 소개해 주겠다”고 해 “부모님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저항했으나 다짜고짜 기차에 실어 어딘가로 데려 갔다.

그 곳은 중국 난징(南京)이었다.

난징에는 일본군 병영들이 많았으며 그 병영에서 약 500m 떨어진 곳에 위안소가 있었다. 위안소는 3층으로 된 벽돌집이었고, 각 방의 크기는 가로 세로 2X2.5m로 방에는 침대가 하나씩 있었다.

그곳이 바로 지금의 난징이제항위안소유적진열관 건물 2층 19번 방이었다.

2003년 박 할머니는 이곳을 실제로 방문해 19번 방을 확인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3년간 위안부 생활을 하고 운남으로 옮겼고, 이 사진은 운남에 있을 때 찍은 사진이다.
19번 방에는 들어서면 운남에서 찍은 박 할머니의 사진이 있다.

중국은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을 기념해 일제에 의해 실제로 운영됐던 일본군 위안소가 있던 난징 이제항 거리의 한 건물 전체를 ‘난징이제항위안소유적진열관지’이라는 이름으로 복원해 전시관을 지난 2015년 12월 문을 열었다.

 

난징이제항위안소유적진열관은 과거에 중국인뿐만아니라 한인 위안부들이 최소한의 인권마저 유린당한 곳으로 현재 전시관 중 ‘조선인위안부 전시관 건물’을 함께 마련했다.

난징이제항위안소유적진열관은 중국의 민국시기에 역사적인 건축물이다. 당시 국민당 중장이던 양푸친이 1935년부터 2년간 벽돌과 나무로 집을 지어 ‘푸친신촌’이라고도 불렸다.

1937년 12월 13일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은 난징대학살을 통해 중국 정복의 야욕을 드러냈고, 이후 이 곳에서 위안소로 시작하며 위안부 제도가 확립됐다.

A동으로 시작해서 C4동까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들이 있다. 여기에는 중국을 비롯해 한국, 북한, 네덜란드, 태국, 필리핀 심지어는 일본인들까지 위안부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일들이 고스란히 전시돼 있다.

실제로 난징이제항위안소유적진열관에는 당시와 입구에서부터 똑같이 재현해 놓았다.

군인들이 위안소 입구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왼쪽에는 군표(돈)를 받는 사람의 책상이 있고, 그 뒤로 이용수칙이 적혀 있다. 맞은편으로 이름이 붙은 나무 푯말이 있어 이름으로 사람을 고르도록 만들어 놓았다.

당시에 사용했던 물건들도 진열해 놓았다. 일본군들이 사용했던 물건들, 위안부 할머니들의 물건들. 이것들 모두는 당시의 모습을 한 눈에 보여주는 것들이다. 숙연하다 못해 참담했다.

올해가 광복을 맞은 지 73년이다. 꽃다운 17살 소녀는 90살 할머니가 됐다. 얼마 전에도 위안부 할머니 한 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집회도 계속 열리고 있다. 어느 지자체에서는 평화의 소녀상 철거 문제가 이슈로 대두됐다.

취재를 마치고 마당을 나왔다. 지난번 방문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진정 우리는 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을까? 

난징이제항위안소유적진열관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예약이 필수다. 하루에 시간으로 나눠 200명만 예약을 받는다. 한꺼번에 사람이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란다. 웨이신으로 친구를 맺으면 한국말로 오디오 서비스 이용이 가능해 쉽게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중국 사람들은 물론 한국인 관광객들이 개인이나 단체로 찾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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