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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바람 바람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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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8.15 15:17
  • 기자명 By. 충청신문
김정호백제문화원장
김정호백제문화원장

인간은 바람과 함께 살아왔다. 바람은 공기의 흐름이다. 고기압 영역에서 저기압 영역으로 흐른다. 대규모 바람으로는 무역풍, 편서풍, 극동풍, 제트류 등이 있다. 지형적 특성에 따른 국지풍도 분다. 바다와 육지의 온도 차이로 낮에는 바다에서 육지로 바람이 불고 밤에는 육지에서 바다로 바람이 분다. 산과 계곡 산들바람도 오전에는 계곡에서 정상으로 바람이 불고, 오후에는 정상에서 계곡으로 바람이 분다. 동요를 부른다. “산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영동지방에서 태백산맥을 넘어 영서지방으로는 ‘높새바람’이 분다.

공기는 이동하면서 다른 것도 실어 나른다. 구름도 실어 나르고, 황사도 실어 나른다. 대부분의 토양은 암석의 풍화작용을 통해 생성된다.

제주도를 삼다도(三多島)라고 한다. 바람, 돌, 해녀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애칭이다. 바람을 빼고 제주도를 생각할 수 없다. 풍차로 풍력발전을 한다. 한때 종잣돈을 모으기 위한 풍차 돌리기 적금이 유행한 적도 있다. 풍차 앞에서 주눅이 든 바람개비 조형물도 해변마다 가득하다.

바람은 방향마다 느낌이 다르다. 동풍, 서풍, 남풍, 북풍의 추억이 다르다. 계절마다 이미지도 다르다. 봄 춘풍은 남풍이다. 봄바람은 훈풍이다. 가을 추풍 추풍낙엽이다. 겨울 동풍 북풍한설이다. 문풍지가 떤다. 

여름을 상징하는 것은 태풍이다. 태풍은 열대저기압으로 폭풍우를 동반한다. 파괴력이 무섭다. 올해 여름 태풍은 모두 한반도를 비껴갔다. 한반도를 에워싼 고기압은 도도했다. 저기압은 고기압을 이기기 못하고 에둘러 중국으로 달아났다. 한반도는 폭염과 열대야, 가뭄으로 힘들다. 최근 6년간 한반도를 관통한 태풍은 없었다. 태풍을 기다리다니, 인간의 욕망은 그렇다. 

선풍기를 종일 틀어 놓는다. 미풍, 약풍, 강풍, 방향도 자유롭다. 손풍기가 일상화되었다. 대한민국이 얼마나 우수한가. 손풍기가 증명한다. 에어컨도 종일 틀어놓는다. 전기요금 누진세 폭탄 논란에 국정지지율이 흔들린다.

바람의 변신은 끝이 없다. 훈풍, 열풍, 삭풍, 광풍, 회오리바람, 칼바람, 피바람….

바람은 동음이의어가 많다. 춤바람이 나거나, 바람을 피우거나, 바람을 맞거나, 불륜이 아니다. 끼는 누구나 품고 있다. 요즘 늦바람이 무섭다. 퇴직 후 열정적으로 취미를 찾은 어른들께 경의를 표한다.

미당 서정주는 23살에 지은 ‘자화상’이라는 시에서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었다”고 썼다. 우여곡절, 파란만장, 온갖 어려움을 돌파해 왔다는 뜻이다.

치맥을 즐겨 먹더니 통풍(痛風)에 걸려 아파하는 아들을 바라보면 애처롭다. 풍을 맞아 운신이 불편한 사람, 바다낚시 바닷바람에 고막이 닳아 보청기를 낀 환자도 많다. 운전석 앞 유리에는 바람막이가 붙어 있다. 바람막이 옷도 있고, 에어컨 바람막이도 있다.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외풍을 막아주지 못해 미안하다.”

바람과 세상과 인간의 삶은 하나다. 선거철마다 바람이 불고, 사람은 바람을 이기지 못한다. 그러나 대부분 바람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약하고 억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편이 되어주는 것이 정치이고, 그들을 돕는 것이 행정이고, 그들을 깨우치는 것이 교육이며, 그들을 위로하는 것이 종교다. 신바람이 나야 한다. 아무리 그래도 마이동풍(馬耳東風)이다. 그러다가 역풍을 맞기를 반복한다.

별명이 바람잡이인 친구가 있었다. 바람잡이는 안 좋은 역할이지만, 우리는 친근한 표현으로 그렇게 불렀다. 늘 앞장서서 바람 잡던 친구는 잘 있는가. 못 본 지 한참 되었다. 어디서 무슨 바람을 잡고 계신가. 번개 호출은 자주 때리고 계신가.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던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시고, 이젠 내가 아버지, 할아버지가 되었다.

청풍명월(淸風明月), 맑은 바람과 밝은 달 아래 풍월을 읊던 선비, 바람은 그런 의미를 갖기도 한다. 
바람은 시시각각 변한다. 탄핵 바람, 미투 바람, 갑질 바람,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대도 지나간다. 평화의 바람, 한반도의 공기는 어디로 이동할 것인가. ‘바람이 불어오는 곳’, 노래가 귓가에 맴돈다. 순풍에 돛 단 듯이 갈 수 없는가.

바람 쐬러 나간다더니, 돌아오지 않는 이들이 있다. 폭염 속 많은 이들이 죽었다. 차라리 태풍을 기다리는 한반도다. 바람 바람 바람! 부채로 바람을 부르고 비를 내리게 하는 요술쟁이는 다 어디로 갔는가.

바람은 단순하다. 공기의 이동이다. 맑은 공기도 움직이고, 혼탁한 공기도 흩어진다. 바람은 저 혼자 도망 다니지 않는다. 여럿이 몰려 다닌다. 

광복절 지나 오늘도 무풍지대 대장간, 대장장이는 땀을 뻘뻘 흘리며 풀무질을 하고 있다. 쇠를 달궈 연장을 만들기 위함이다.

김정호 백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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