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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포럼] 소리가 전하는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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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8.16 19:01
  • 기자명 By. 충청신문
피아니스트 박상희
피아니스트 박상희
화면 가득히 피아노가 서있다. 묵직한 몸덩이가 버거웠는지 겨우 버티고 서있는 모양새다. 그 뒤에 벽은 물로 얼룩져있다. 수위가 한참 높았다가 빠진 듯 그 여백이 무늬를 그리고 있다.

한 사람이 다가와 건반을 눌러본다. 보통의 피아노 소리가 아니다. 음의 진동이 고르지 않고 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무언가 말을 건네는 것 같다. 건반을 치던 사람은 이내 '쓰나미 피아노'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가 피아노를 만난 것은 우연은 아니었다. 일본에 북동부에 큰 쓰나미가 덮쳤을 때 살아남은 피아노가 있다하여 그 곳을 방문했다. 그는 뒤틀려버린 피아노에서 자연의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쇠줄과 튜닝핀에 죄여있던 것이 오히려 자연적으로 풀어지면서 헤쳐 나온 자연적인 소리라고. 너무도 당연했던 조율된 음정들이 너무나 인위적인 매끈한 아름다움이었다면, 그 피아노의 소리는 낯설지만 자연의 힘에 변형된 자연스러움이 있었다.

피아노를 어루만지던 사람은 류이치 사카모토. 위 내용은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CODA'의 한 장면이다. 그의 2017년 앨범 'async(비동기성)'에 실린 ZURE에 그 소리가 녹아들어있다. 이 앨범은 그가 암 투병으로 안식년을 보낸 후 발표된 솔로 앨범이다.

영화음악으로 친숙했던 그의 작품들은 그가 맞닥뜨린 삶의 위기의 순간으로부터 변모하고 있는 듯 했다. 반핵 운동을 하고, 환경에 관심을 가지며 평화에도 목소리를 높이는 그는 음악가로서 할 수 있는 메시지를 소리에 담아내고자 하는 것 같다.

물에 빠졌던 피아노의 소리를 담고, 북극의 얼음이 녹는 소리를 담으며, 반핵과 반전의 소리를 담는다. 그는 삶과 음악의 연결 고리를 '소리'에서 찾고,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소리들에 귀를 기울이라 한다.

어느 날 나에게도 하나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 악기가 연주가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을 구한다는 질문이었다. 철거가 진행되고 있는 대전의 어느 잘 보존하고 있는 건물들이 많은 동네인데도, 보존가치가 있는 공간들에 대한 조사나 연구가 미처 이루어지기도 전에 일이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이런 문화의 가치와 보존에 대한 열의가 있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내게 악기 감별을 의뢰했던 사람은 피아노라는 악기를 통해서 근대 건축물을 보고 있었다. 지반과 기둥을 통해 공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 마치 건축물 같다는 이야기였다.

누군가의 꿈을 가진 보금자리로서 지어진 독창적인 구조의 집들이 허물어지는 것을 보며, 그 시대를 함께 살았던 피아노로부터 사라질 시간과 문화로서의 가치를 느꼈던 것이다. 소리를 내는 건축물. 그것을 통한 기억을 남기고 싶어 했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그 곳의 풍경을 전해 들었다. 그곳에서 살던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반가워했을까. 알 수 없다. 저마다 다른 삶과 다른 사연들이 있을 테지. 시대의 한 부분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려가는 것이 가슴 아팠다. 새롭고 편리한 것이 발전의 전부는 아닐 텐데. 유럽에 있는 몇 백 년씩 보존되고 있는 옛 건물들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이야기와 볼거리가 가는 길마다 가득했던.

사진과 영상뿐이었지만 많은 장면들이 스쳐지나갔다. 덩그러니 바랜 빛을 받고 서 있는 피아노. 겉은 멀쩡하나 방치되었던 속의 문드러짐이 아릿한, 역시나 세월을 품은 소리에서의 가녀린 떨림 등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가족의 온기로 따뜻한 시간을 보냈을 그 피아노가 지금은 버려진 상태로, 마지막으로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온 것은 아닌가.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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