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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무풍지대(無風地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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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8.27 16:38
  • 기자명 By. 충청신문
한기연시인. 평생교육강사
한기연시인. 평생교육강사

바람은 조용했는데 소리는 유난스레 시끄러웠다. 지난 8일간 긴장과 공포로 몰아 넣었던 제19호 태풍 ‘솔릭’이 24일 한반도를 빠져나갔다. 무더위를 식혀줄 태풍이 될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한반도를 관통할 것이라는 예측으로 불안감은 고조됐다. 나라 전체가 술렁이듯이 거의 모든 일정과 행사가 취소되고 적색신호를 보내는 재난 안전문자가 쏟아졌다. 

호들갑스럽게 태풍을 예방하려는 움직임으로 둘째 아들이 덕을 보았다. 7박 8일 일정으로 군에서 휴가를 나와 금요일 복귀예정이었는데, 토요일에 오라고 연락이 왔다. 비상이 걸려서 하루 일찍 복귀 명령이 내려질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군대의 좋은 모습을 본 것 같아서 다행이기는 하나 제대할 때까지 노심초사인 게 부모 마음인가 보다. 이제 겨우 6개월 정도 지났을 뿐인데 부대에서 ‘잘 있다’는 안부 전화를 해도 걱정, 안 해도 걱정되었다. 남들은 쉽게 가고 금방 제대하는 듯 보였는데, 내 일이 되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아들은 입대 전에 발목이 아파서 침 치료와 운동치료를 병행하며 완치해서 군에 가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그러나 불편한 상태에서 해병대에 갔고, 6주간의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았다. 해병대는 잠도 안 자고 행군하는 극기 훈련주가 있다는 데 그 고통을 감내하고 수료를 한 것이다. 자대 배치 후 국군병원도 다니고, 수도병원에서 MRI를 찍게 되었다. 휴가 때 영상을 복사해서 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걱정스런 마음으로 휴가 오기를 기다려 영상을 들고 예약한 전문병원을 갔다. 발목 인대가 파열되고 뼈 조각이 있어서 수술이 필요하다는 소견이셨다. 수술 후 한 달 간 입원치료하고 한 달 간 재활치료를 해야 한단다. 당장이라도 수술일정을 잡고 치료해 보고 싶었다. 그런데 아들은 조금 불편할 뿐이라며 제대 후 수술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차선책으로 외부에서 수술한 후 군병원에 입원해서 치료 받아보라고 했더니 그럴 여건이 안 된단다. 그렇게 속을 끓이며 아들을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무탈하게 일상생활이 이루어졌다. 휴가 나온 기념으로 가족사진도 찍었다. 큰 아들은 서울로 올라가 2학기 준비를 하고 평온한 일상이었다. 그런데 모범생 같던 큰아들이 사고를 쳤다. 바람과 비의 소용돌이인 태풍 ‘솔릭’으로 어수선한 때이다. 순간 ‘태풍의 눈’이 떠올랐다. 태풍의 눈은 두꺼운 구름으로 둘러싸인 태풍, 허리케인, 사이클론 등 열대저기압의 중심부에 나타나는 맑게 갠 무풍지대를 말한다고 한다. 태풍으로부터의 피해를 가장 줄일 수 있는 공간인 셈이다.

이번 태풍이 남해안 일부에서는 피해가 있었지만, 우려했던 것과 달리 쓸 데 없는 걱정으로 끝났다. 태풍 때문에 모든 일정이 꼬여 버린 어떤 이는 우스갯 소리로 ‘허풍’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했던가? 아들 둘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자식이 일으키는 예기치 않는 일은 나에게 태풍과 같다. 무풍지대처럼 고요함 뒤에 언제 불지 모르는 태풍처럼 그 소용돌이의 깊이를 알 수 없으니 답답하기도 하다. 성년이 되어 이젠 제 갈길 잘 가겠거니 했는데, 느닷없는 사건은 아직도 애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이번 일을 계기로 스스로 한 일에 회피하지 않고 책임지는 성인으로 성장하길 바랄 뿐이다. 

조용히 지나가버린 태풍으로 무더위가 가실 만큼 바람이 시원해졌다. 창문을 열고 속이 시원할 만큼 바람을 맞는다. 아무런 갈등 없이 바람을 쐬고 싶다. 언제쯤 자식에게 연연하기 않고 흔들리지 않는 무풍지대에 살 수 있을까?

한기연 시인. 평생교육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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