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세상사는 이야기] 여름을 보내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18.08.28 16:33
  • 기자명 By. 충청신문
변정순음성수필문학회 회장
변정순음성수필문학회 회장

태풍 ‘솔릭’이 후딱 지나갔다.

미크로네시아에서 제출한 이름으로 전설 속의 족장을 뜻한다는 솔릭 19호가 한반도를 관통하여 그 위력과 피해액이 역대 최악의 피해를 가져 올 것이라고 전파를 타고 예보했던 그였다. 각 기관에서는 피해를 최소한 줄여보고자 비상근무를 하면서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했다. 이제 막 익어가는 들녘의 벼를 바라보다가 다랑이마다 덮을 수도 없고 한숨 쉬며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디 벼뿐 이겠는가. 오빠도 하나밖에 없는 누이가 걱정이 되는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의 일터가 있는 곳은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 다 날아갈 판이라고 하며 강한 바람 때문에 유리창이 깨질 수 있으니 완전하게 잘 닫고 테이프나 신문지를 붙이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우리지역의 학교도 24일 하루 동안은 모두 휴교를 하고 긴장상태였다. 그렇게 온 나라 안의 사람들이 긴장을 하고 걱정을 하는 동안 그 요란 떨던 솔릭이 우리지역에는 비만뿌리고 순하게 지나갔다. 

오히려 들판에 용광로처럼 끓던 무더위 때문에 엎어져 있던 농작물은 태풍을 맞고 일어났다. 어쨌든 당장은 약비가 되었지만 자꾸 내리는 비 모양새를 보니 뒤늦은 장마가 온 것 같다. 참 고약하다. 언제나 곡식들에게 흡족한 비만 내릴까. 머리를 질끈 묶고 어깨에는 젖은 수건을 얹은 폼으로 풀 한포기를 뽑을 수 있었던 지독하게 더운 날이 언제 있었나 싶다. 

이제 처서도 지나고 징그럽던 더위도 한 풀 꺾여 새벽공기도 달라졌다. 그러고 보니 벌써 백중도 지나갔구나. 내가 다니는 절에서는 해마다 백중재를 올리는데 접수만 해놓고 까먹고 참여도 못하였다. 지금은 예전 같지 않아서 놀이보다는 백중날에는 불공만 드리고 조상 영가께 제만 올리고 있다.

어린 시절, 백중날은 어른들 틈에서 노느라 즐거웠었다. 이날은 일손을 놓고 가족이 모두 쉬는 날이라서 집안에서는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호박 부치기를 굽고 기름내를 풍겼다. 할아버지는 하얀 모시 바지저고리를 입으시고 백중을 즐기러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면소재지로 나가셔서 과일이며 음식을 사 드시면서 그냥 먹고 마시고 놀면서 하루를 보내는 날이었다. 

그렇게 어른들이 노시는 모습도 재미있어서 구경하다 음식을 얻어먹기도 하였지만 참 풍요롭고 정감 있는 문화였다. 그때 포도 한 송이를 얻어서 순식간에 씨 채 먹어 버렸던 꿀맛 같은 기억이 떠오르면서 웃음이 난다. 집에서 일하는 아재에게도 장에 나가서 흐드러지게 먹고 놀다 올 수 있도록 휴가를 주었다. 물론 아버지의 성품으론 용돈도 넉넉히 주셨을 거라 짐작된다. 농사일은 너무도 힘든 일이지만 우리 집 생업이었다. 힘든 농사일을 도와주는 아재에게 이날 하루를 배려 해주는 것은 당연 한 거였으니까.

이제 이런 아름다운 세시풍속 백중놀이는 거의 사라진듯하다. 전에 한번 목도를 지나는데 목도강가에 나룻배 한 척이 있어 신기하여 주위사람에게 다가가 물어보니 잊혀져가는 전통문화의 맥을 이어가려 ‘목도 백중놀이’ 행사를 하였다고 하면서 계속 이어갈 거라고 했었다. 그곳에서라도 백중전통놀이가 사라지지 않게 잘 보존하면서 이어갔으면 하는 큰 바람이다.

갑자기 또 비가 쏟아져 다 저녁 뜰에 나가보니 분꽃이 환하게 피어있어 깜짝 놀랐다. 분꽃은 저녁나절 활짝 핀다. 보리쌀 안칠 때 피는 꽃이라고 어머니 새색시 적에는 이 꽃이 피면 저녁밥을 하셨다고 한다. 매일 물은 주는데도 온통 이파리가 타들어갔던 풀꽃들, 폭염에도 잘 버티는 바람에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피워 주니 기특하다.

지독했던 더위도 태풍 솔릭도 입추며 말복이며 처서와 백중이 독한여름과 함께 지나갔으니 계절의 순환은 참 놀랍다. 그들은 자기 할 일을 모두 끝내고 제자리로 갔다. 내가 차지한 올 여름은 “더워 죽겠다” 는 말만 내뱉은 것 같아 여름에게 미안할 뿐이다.

나의 여름이 다 가기 전 봉숭아꽃물이라도 들여야겠다.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