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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아리랑 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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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9.10 16:03
  • 기자명 By. 충청신문
한기연시인. 평생교육강사
한기연시인. 평생교육강사

흥겹게 ‘아리랑 목동’을 여러 번 반복해서 부르면서, 결혼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한 소절씩 가르쳤다. 10월에 있을 다문화 축제에서 한국어반도 학생들과 함께 참여하고자 노래 연습을 하게 되었다. 학습자의 구성은 나라도 달랐고, 학습수준의 편차도 심했다. 장기 자랑으로 노래를 선택한 뒤에는 선곡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고민 끝에 ‘아리랑’과 ‘아리랑 목동’ 중에 잔칫날에 더 어울리는 ‘아리랑 목동’으로 결정했다.

첫 연습을 하면서 혼자 신나서 부르고, 이 곡이 얼마나 흥겹고 대중의 호응도를 끌어 낼 수 있는 지를 강조했다. 그런데 학생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처음이라 그러려니 하고 다음 시간에도 수업이 끝나기 전에 연습을 하기로 했다. 수업이 끝나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학생 한 명이 내 옆을 따라오며 “아리랑이 더 좋은데요…” 하며 고운 목소리로 아리랑 앞 부분을 부르기 시작했다. 순간 둔기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 학생은 카자흐스탄에서 온 스물일곱 살 된 아가씨였다. 

우리나라의 전통 민요인 아리랑은 단순한 노래로서 반복적인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라는 여음과 지역에 따라 다른 내용의 사설로 불리고 있다. 노랫말에는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과 삶에서 느끼는 희로애락과 애환이 담겨있다. 단순한 음률과 노랫말은 상황에 따라 편곡과 개사가 가능하고, 함께 부르기 쉽다. 또한 전통음악을 넘어 대중가요는 물론 관현악곡으로도 편곡되어 호소력 있게 청중으로 하여금 심금을 울린다.

이산가족의 아픔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아리랑은 남과 북의 화합에서도 힘을 발휘한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개회식에 남한과 북한의 대표팀은 공동 입장 당시 아리랑을 불렀다. 또한 2002년 한국과 일본의 월드컵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붉은 악마’는 아리랑을 날마다 불렀다고 한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순간이나 하나로 응집된 힘이 필요할 때 한 목소리로 부른 노래이다. 피겨의 여왕 김연아 선수는 2011년 세계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에서 아리랑 선율을 주제로 편곡한 ‘오마주 투 코리아(Homage to Korea)’라는 음악을 배경으로 연기하기도 하였다.

아리랑은 고향을 떠나서 타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경우에 더 애틋해지고 더 많이 부르게 된다. 해외에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찾고, 이방인의 설움을 아리랑을 함께 부르면서 견디곤 했다. 어머니의 자궁을 이어주는 탯줄처럼 뿌리를 잊지 않도록 해 주는 연결의 노래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 살면서는 그 노래가 담고 있는 의미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2017년 11월 1일 기준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의하면 국내 거주 외국인은 148만 명으로 총 인구의 2.9%에 달한다. 이제 더 이상 단일민족을 내세우는 것은 무의미하다.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많은 부분을 외국인이 제 몫을 해 내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다양성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누구에게나 뿌리는 있다는 것이다. ‘아리랑’을 구성지게 부른 그녀의 부모는 고려인이었다. 아리랑은 우리가 어릴 적 교과과정에서 배우거나, 배우지 않아도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들어 왔다. 그녀는 카자흐스탄에서 부모님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자랐다고 한다.

아리랑을 계단에 서서 한 소절 부르던 그녀의 모습은 며칠 동안 잊히지 않았다. 너무 쉽고, 느린 곡조라서 축제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한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며칠 뒤 수업 시간에 ‘아리랑’을 불렀다. 느리지만 반복적인 가사와 음률을 쉽게 따라했다. 함께 부르기 좋은 곡으로 그들은 가장 한국적인 것을 선택했다. 교실에 울려 퍼지는 아리랑 곡조에 그녀가 소프라노처럼 고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기연 시인. 평생교육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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