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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포럼] 매일같이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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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9.13 15:40
  • 기자명 By. 충청신문
박상희피아니스트
박상희피아니스트

음악가로서, 특히 연주자로서 매일같이 하는 것이 연습이 되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한 하루를 보내는 마음의 부담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매일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므로 본인이 그것에 매여있지 않으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하지만 어떠한 최소한의 양심이랄까.

연습시간 확보가 늘 어렵다며 툴툴대던 어느 날, 방송을 듣다가 김중혁 작가의 멘트가 귓전을 때린다.

본인은 마감 기한을 어겨본 적이 없으며, 매일같이 일정분량의 원고를 쓴다는 것. 실제로 다작으로도 유명한 그를 이동진 평론가가 재미지게 추켜세운다. 

많은 음악가들의 삶은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퍼포먼스에 국한되어있지 않다. 소수의 세계적인 음악가들은 연주가 주된 일이겠지만, 그 외의 현실은 다르다.

연주자 역할 한가지에만 집중하기도 어려운 이 음악가들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전공자나 대중을 위한 강연을 다니며, 때론 학교 행정 업무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인다.

공연이나 방송을 기획하는 일을 하기도 하며, 글을 쓰거나 개인 콘텐츠를 개발하거나 음원 사업을 하는 등 모습이 매우 다양하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는 없기에 많은 시간을 쪼개어 바쁘게 살아간다. 일반 회사원들처럼 업무 시간이 정해져있는 것도 아니고, ‘휴가’라는 명목을 빌어 쉴 수도 없다.

재량에 맡겨진 일들이다 보니 1인 기업과도 같은 스케줄 관리와 신속하고 순발력 있는 업무 능력이 절실하다. 

일이 부서별로 분담되어있는 조직의 구조가 항상 부러운 건 나만 느끼는 걸까. 대체 불가능한 성질의 일들이 많다보니 도움을 청하기도 어렵다.

이런 많은 일들 사이에서 그래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일은 바로 ‘연주’이다. 음악가로서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행위이며, 존재의 이유를 증명하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공을 들여야 하는 연주가 위에서 언급했던 일들과 상충하면 일상은 마비가 온다. 연주를 위해서는 연습 시간이 다량 확보되어야하는데, 일상은 이미 다른 일들로 빼곡히 들어차있다. 

어떻게든 짬을 내어 연습 시간을 가져보려고 해도 대외적인 일은 기한에 묶여 있으니 개인적인 연습은 자꾸 뒷전이 된다. 

그래서 평소에 꾸준히 연습을 해야 한다. 기량을 유지하기 위해서, 좋은 연주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매일같이 하는 연습이 중요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늘 생각하고 실천하려 하고 있으나 어렵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겠고, 의지의 문제도 있겠다. 학업에만 매진하며 연습으로 대부분을 보냈던 그 때와 현실적 상황은 매우 다르다. 환경이 뒷받침되기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충분한 연구 시간을 가지고 진득하게 준비하는 연주보다는 짧은 시간에 완성도를 높여야 하는 연주들이 많아졌다. 이는 물론 단기간에 성과를 내야하는 프로젝트들이 다수인 것이 문제이기도 하지만.

매일같이 해야 하는 이것은 어느 누구의 간섭도 통제도 없다. 오롯이 스스로의 의지와 결정에 의해 이루어진다. 

달콤한 것을 먹는 것처럼 저절로 이끌리는 재미가 있는 일이라면 좋겠지만, 이 직업군을 선택한 이상 부여된 업무와도 같은 것이라 체계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연습시간에 비례하여 눈에 보이는 성과가 드러나는 일이 아니니 효율성도 매우 떨어지는 일. 하지만 그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쌓아나가야 하는 작업. 연습을 하는 동안의 즐거움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일상에서 직업적 균형을 찾기란 너무나 어렵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음악가들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인지.

김중혁 작가의 말을 듣다보니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작가’에서 한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그는 소설을 집필할 때 매일같이 200자 원고지 20매를 쓰는 것을 규칙으로 삼고있다고. 그는 이자크 디넨센의 ‘나는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 조금씩 씁니다’라는 말도 인용했다.

김연수 작가도 ‘소설가의 일’이란 책에서 글을 쓰는 일을 제일 먼저 할 일로 정하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일단 제쳐두고 매일 글을 쓴다고 한다. 그들이 말하는 ‘매일’이란 단어에 자꾸 방점이 찍힌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매일같이 하는 일이 곧 그 사람의 직업을 나타내는 것이겠다. 어쩌면 시대가 변하여 한 가지 직업으로 사는 세상이 아니니 나의 괴리감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나는 나의 매일을 생각하며 나는 과연 누구인가 자꾸 되묻게 된다.

박상희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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