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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글쟁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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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9.17 16:09
  • 기자명 By. 충청신문
이혜숙수필가
이혜숙수필가

가슴에 콩닥거린다. 천 명 정도 모인 곳에서 공연을 해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던 내 간이 쪼그라들고 있다. 박 교수님의 수필 강의를 듣고 나서 수필 낭송을 하려니 왜 그리 부끄러운지. 잘 쓰지도 못하는 수필의 대가 앞에서 낭송한다는 것이 부담이 된다. 쥐구멍이 있다면 들어가고 싶다.

등단이랍시고 하고 이리저리 원고를 내면서도 이렇게 부담이 되지 않았다. 삼 년 정도 모 신문에 글을 내고 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냥 쓰기만 했다. 글을 쓸수록 어렵다는 생각은 했지만 남들도 다 그렇게 쓰는데 어떠랴 싶었다.

대가들은 원래 잘 쓰는 것이고 나 같은 병아리야 뭐 어때? 하는 생각이 앞선 던 것 같다. 아니 안일하게 되지도 않는 글을 쓰면서 수필가라는 명함을 내세운 글을 쓴 것은 아닐는지. 만감이 교차하면서 시원한 실내임에도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게 타오른다.

더위의 한 가운데 인 듯 땀이 줄줄 흐르는 초여름. 문학미디어 회원들의 세미나가 계획된 날이다. 청주에서 아홉 명의 회원이 봉고차에 몸을 실었다. 함께 가는 회원들은 차가 비좁을 정도로 손에 들고 온 것들이 많았다.

정이 많은 청주 회원들은 먹을 것을 챙겨 와서 같이 가는 회원들과 나누어 먹는다. 정성이 담긴 음식을 먹으며 행복했지만 빈손으로 온 것이 부끄러웠다. 대구까지 가는 동안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며 사는 이야기 보따리가 차 안을 가득 메웠다. 대구 비슬산에 있는 세미나 장소를 향해 가는 내내 입과 귀가 호강한 날이다.

여름 세미나 때마다 다른 일이 생겨 한 번도 참석하지 못하고 이번이 처음으로 가는 것이다. 처음이라 낯설 거란 생각으로 조심스러웠다. 대구지회에서 주최하고 서울과 청주에서 많은 회원들이 먼 길을 달려왔다. 가끔은 보았던 분들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부담이 되지 않았다.

멋쟁이로 소문난 민 교수님의 강의 중에 가장 가슴에 남는 말은 글과 작가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말이라 그런지 공감 백퍼센트다. 글은 보면 정말 아름답고 본받을 점들이 많다. 그런데 직접 만나보면 글과 작가가 완전 다르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작가의 글이 독자에게로 가서 읽힐 때 독자 것이 되어야 좋은 글이란 생각이다. 다른 작가의 글을 읽을 때는 정말 멋지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감탄을 할 때도 있고 글 속에 내가 녹아 있을 때도 있다. 글 속에서 작가와 독자가 공감 수 있는 글을 과연 내가 쓸 수 있을까.

비슬산의 시원한 공기가 여름임을 잊게 한다. 좋은 분들과의 만남. 주옥같은 두 교수님의 강의. 멋진 강의를 가슴에 담아 내 것으로 해야 하는데 집으로 돌아가 잊지나 않을까. 독자와 하나 되는 글을 쓸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세미나 이튿날. 비슬산 정상에 있는 대견사를 찾았다. 전국을 다니며 삼국유사를 쓰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은 일연 선사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라 더 반가웠다. 역사서가 될 글을 남긴 분이 바로 이곳에 계셨다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쿵쿵거린다. 일연 선사가 참선했다는 바위에 앉아 선사는 무슨 생각을 했나 생각해 본다. 참선은 고사하고 글을 잘 쓸 수 있었으면 하는 욕심이 생기는 것은 중생이라 그러리라.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글을 잘 써야 한다는 부담이 꽤 들었다. 이런 시간과 기회가 더 많이 있어 글쓰기의 밑천으로 자리하길 바라본다. 비슬산의 정기와 멋진 두 교수님들의 강의가 있어 이번 여름은 더위도 비켜갈 것 같다.

‘세상에 제일 고약한 도둑’ -일연스님_

첫째. 눈 도둑은 보이는 것마다 가지려고 성화를 하지. 
둘째. 귀 도둑은 그저 듣기 좋은 소리만 들으려 하네. 
셋째. 콧구멍 도둑은 좋은 냄새는 제가 맡으려 하고 
넷째. 혓바닥 도둑은 온갖 거짓말에다 맛난 것만 먹으려 하지 
다섯째. 제일 큰 도둑은 훔치고 못된 짓 골라 하는 몸뚱이 도둑 
여섯째. 마지막 도둑은 생각 도둑. 이 놈은 싫다. 저 놈은 없애야 한다. 혼자 화내고 떠들며 난리를 치지. 
그대들 복 받기를 바라거든 우선 이 여섯 가지 도둑부터 잡으시게나.’

‘진정한 글쟁이가 되어라. 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해 글을 쓰지 말라’는 스님의 법문이 아닐까. 죽기 전까지 맛있는 글을 쓸 수 있는 글쟁이가 되기 위해 상선약수(上善若水) 하리라.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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