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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가을의 문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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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9.18 16:30
  • 기자명 By. 충청신문
강희진음성예총 부회장
강희진음성예총 부회장

어제 그제 비가 내렸습니다. 모두들 가을을 재촉하는 비라고들 했습니다. 그런데 지역 축제기간이라 주최 측은 참 난감했을 것 같습니다. 천막 아래로 모여든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면서 나도 카디건이라도 하나 걸치고 나올 걸 후회 했습니다. 그렇게도 더웠던 여름은 쉬 물러나지 않을 것 같더니만 지나고 나니 마치 없었던 양 합니다. 

벌써 가로수의 단풍잎들이 엷은 겨자색입니다. 나는 이때가 되면 자전거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자전거 앞에 매달린 바구니에 가방을 넣고 샛노란 은행잎이 휘날리는 거리를 지나 맑은 물이 흐르는 천변을 따라 여유 있게 가는 뒷모습이 찬란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올해도 마음만 있을 뿐 그냥 넘길 거라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또 가을이 오면 같은 생각을 하겠지요.

며칠 전 중학교 친구가 날 찾아왔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지 40년이 지나서야 날 찾아보고 싶은 이유가 ‘가을’ 때문이라 했습니다. 가을이 시작되면 입술이 하얗게 일어나 겨울까지 늘 그렇게 다니던 아이가 저였답니다. 아침에 화장하며 입술을 바르다 생각났고 그래서 못 견디게 보고파서 찾았다 했습니다. 우리가 다녔던 중학교 등굣길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나에 대한 추억은 거기서부터랍니다. 정문에서부터 수 십 미터 늘어서 있던 플라타너스 길을 생각하다 보면 거기 어딘가에 제가 서 있답니다. 그곳에 머리가 단정하고 늘 책을 겨드랑이에 끼고 한쪽 어깨가 조금 올라간 낭만적인 소녀가 저였다고 했습니다.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나무 뒤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얇은 입술을 오므리고 있는 내가 오버랩되었다고도 했습니다. 다행이 내가 인터넷에서 검색이 됐고 전화로 한참을 수다를 떨었는데 지난주 저를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가 살아온 길이 순탄치 않았음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중학교 선배였던 남편은 젊은 나이에 몹쓸 병에 걸렸답니다. 남편의 간병과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는데 결국 남편이 고생한 보람도 없이 저 세상으로 먼저 갔다는 친구 앞에서 같이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다행이 일찍 결혼했기에 아이들이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그녀에게 힘이 되어 주고 능히 견딜 수 있는 원천이라 했습니다. 친구는 남편과의 아름답고 긴 추억이 있어 오늘이 하나도 쓸쓸하지 않다고도 했습니다. 찻집에 앉아 아름답게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앞으로는 그녀의 삶이 저 가을 하늘처럼 곱기 만하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습니다.

중학교 선, 후배 사이였던 그들은 우리 중학교에서 유명하게 연애를 했고 우리들은 참 많이도 쑥덕거렸습니다. 그들에 대해 이야기는 돌고 돌아 각색 윤색까지 돼서 우리들 사이를 떠 돌았습니다. 그럼에도 의연하더니만 부모의 반대를 물리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이른 결혼을 했고 이른 이별을 했더군요. 그 친구는 남편이 이렇게 일찍 가려고 결혼을 빨리 서둘렀나보다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친구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열다섯 소녀였던 나와 만났습니다. 잊었던 그 시절의 일들이 어제 일처럼 선명히 떠오르고 그 친구들의 안부가 궁금했습니다. 한적한 곳에 차를 세우고 친구들에게 안부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이토록 푸른 하늘이 펼쳐지는 날에는 먼저 마음을 열어도 좋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녀를 만난 후 며칠째 추억에 푹 빠져 지내고 있습니다. 올가을에는 못 잊을 추억 하나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옛 연인이 사랑하지는 않지만 꼭 한번 보고 싶다며 찾아오는 부질없는 생각도 하고 짝사랑 했던 오빠의 이름을 인터넷에서 검색해보기도 했습니다. 가을은 이렇게 방치해 두었던 감정들을 꺼내어 보듬어 보고 추억의 바퀴를 굴리며 센티 해 보는 것도 다 용서될 듯합니다. 가을은 상념의 계절이며 그러기에 고독할 줄 아는 시인의 심정이 되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시절 즐겨 읽었던 헤르만 헤세, 라이너 마리아 릴케, 하이네의 서정시로 올 가을을 물들여 보고 싶습니다.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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