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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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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10.22 16:22
  • 기자명 By. 충청신문
한기연시인. 평생교육강사
한기연시인. 평생교육강사

오가는 길가에 단풍 든 모습이 보기 좋다. 운전 중에 잠깐씩 눈 돌려서 바라보며 혼잣말로 감탄사를 쏟아낸다. 일주일동안 휴일도 없이 수업을 하면서 여유가 없어졌다. 그러던 중 모처럼 시간이 났다. 물론 북페스티벌에 체험행사를 하기 위해 간 것이지만 바깥나들이에 기분이 좋았다.

도서관 주변에서 펼쳐지는 북페스티벌은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함께 간 학생에게 체험 장을 맡겨두고 짬짬이 곳곳을 둘러보았다. 이 곳 체험 장이 좋은 이유는 도서관이 있기 때문이다. J군에서 운영하는 군립도서관은 일반적인 도서관과는 다른 편안함이 있었다. 올 여름 두 시간 정도 시간이 남아서 도서관 어린이 자료실에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입구부터 형식에 구애받지 않은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딱딱한 책상이 놓여 있는 공간이 아니라 벽면이 푹신한 매트가 있었다. 놀이터처럼 구석구석에 공간이 만들어져 있고, 바닥에 앉아서 편히 앉거나 계단처럼 생긴 곳에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책은 바른 자세로 읽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공간이었다. 

자리를 살피다가 다락방을 연상시키는 듯한 구석에 기대어 앉았다. 반쯤 누운 자세로 책을 읽었다. 무더위를 피하고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었다. 주위를 보니 어른도 많았고, 아이들은 계단에 걸터앉아서 책을 보기도 했다. 예순은 되어 보이는 여성은 민화를 그리고 있었다. 아마 개인 탁자를 가져와서 하는 듯싶었다. 여름 피서지로 마음에 쏙 드는 장소였다. 옆으로 누워서 책을 읽다가 잠깐 잠이 들었다.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로 아팠는데 자고 일어나니 조금 나아졌다. 10여분의 단잠이 보약 같았다. 다시 책을 보다가 아쉬운 마음으로 도서관을 나섰다.

행사장 앞에는 부모님이 아이와 함께 기증한 책을 간격별로 세우고 있었다. 길게 늘어 선 책들이 도미노 블록이 되었다.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시끌벅적거렸다. 안으로 들어가니 꽃차와 커피를 무료로 나누어 주었다. 북 카페에 앉아서 차 한 잔을 마시며 드나드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조용한 곳에서 쉬고 있지는 않지만 오랜만에 사람들 속에 있으니 흥미롭고 기운이 났다. 다른 사람이 운영하는 체험을 보면서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며 혜안을 넓히기도 한다. 

남편과는 시간을 즐기는 방법이 달라서 가끔 다투기도 한다. 지난번 관내 축제에 유명한 가수 공연을 보러 갈 때도 마지못해 따라 나섰다. 남편은 축제장에서 한 잔 마시거나 공연 보는 것을 좋아한다. 휴일에는 산으로 들로 다니며 철마다 다른 것을 채취해 온다. 함께 하지 못하는 미안함에 간혹 따라나서기도 하지만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옆에서 쉬고 있어도 힐링이 되지 않았다. 저마다 자신만이 좋아하는 공간이 따로 있고, 에너지를 받는 방법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종 걸음으로 하루를 바삐 사는 내게 주변 사람들은 언제 쉬냐고 묻고는 한다. 그러면 나는 웃음으로 대답한다. 바쁜 중에도 나만의 휴식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수업 중간에 비는 기다림을 혼자만의 명상으로 보내기도 한다. 하루라도 시간을 온전히 내어서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J군립 도서관과 같은 공간도 좋아한다.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쉰다는 의미의 ‘휴식’처럼 체험 장에서의 배움도 그렇다. 운전을 하면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도 힐링 요소가 되어 준다. 

사람마다 저마다의 비밀스런 휴식 공간이 있다면 건조한 일상에 단풍처럼 다채로운 빛깔이 생길 것이다. 나도 그런 공간이 곳곳에 있기에 지치지 않고 일 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남편과 내가 유일하게 공통으로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은 집이다. 어두운 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무거운 몸도 현관에 들어서면 가벼워진다. 가을 밤, 소파에 누워 잠이 든 남편이 있어서 다행이다.

한기연 시인. 평생교육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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