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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노키즈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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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10.23 16:12
  • 기자명 By. 충청신문
변정순음성수필문학회 회장
변정순음성수필문학회 회장

‘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김동규의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들으며 길을 나섰다. 바람과 단풍이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날 지인들을 만나기로 한 곳은 원남지. 주변에 품바체험촌이 생겨서 요즘 이곳에서는 ‘풀벌레 노래하는 프리마켓’이 꾸며지고 있다. 시월 한 달 동안은 농산물 판매도 하고 누구나 핸드메이드 공예품을 체험할 수 있고 휴일은 악기연주와 걸 그룹의 노래와 춤, 퓨전국악의 선율로 가을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다. 구경 삼아 산책도 할 겸 모임장소를 여기로 택했다. 신혼 때부터 만났던 우리는 세월 흘러서 각자 타 지역에 살고 있지만 유쾌한 만남을 갖는 그리운 얼굴들이다.

산책하기 전 영월댁이 아침을 안 먹어서 배고프다하여 때 이른 만둣국을 먹었다. 식사 또한 면내 부녀회에서 장만하여 제공해주는 착한 가격의 먹거리였다. 식사를 하면서 일 년에 두세 번 만나는 우리는 서로가 너무 궁금했다. 우리 또래 여자들이 모이면 수다 떠는 공통주제가 남편얘기, 시댁이야기, 그중 고부갈등 또 자식자랑인데 우리도 역시 아이들이 클 때의 모습과 지금 성장한 모습을 번갈아 가며 자식들 얘기에 빠졌다. 갓난아기 때부터 봐왔던 아이들은 특별히 부모 속을 썩이면서 자란 자식도 없었지만 또 특출나게 뛰어났던 자식도 없었던 것 같다. 이중에 한 집에서 아들을 둘이나 성당의 신부님으로 만든 신부 엄마의 내공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칭찬해 주었고 교사가 된 아들, 경찰이 된 아들 딸, 성악가 딸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는 우리의 아들딸들의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 녀석들 아기 때 우리는 거의 매일 만났었다. 집안일이 끝나면 유모차에 태워 이 집 저 집으로 마실을 다녔다. 또 지네들도 만나면 엄불 덤불 잘 놀았다. 아이가 먹는 분유부터 유모차는 어디 제품이 좋고 아기가 설사 할 때는 어떤 분유를 먹여야 하고 생우유는 몇 살부터 먹여야 하는지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직장에 가서 일하는 것보다 육아에만 전념하였다. 애를 들쳐 업고 시장을 둘러보기도 하고 어디에서든 항상 아이들과 함께했다. 어쩌다 외식을 할라치면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난리 법석을 피우는 일이 어디 한두 번였겠나. 그러니 뛰지 않게 다독거리며 최소한 식당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신경을 쓰는 일은 어른들 몫이었다. 요즘은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주어 달래고 있는 어른들이 많지만 애들은 한군데 가만히 오래 앉아 있질 못하고 집중을 하지 못한다. 이런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들이 그리 오래 되지 않는 것 같은데 벌써 청년이 되어 결혼도 시키고 손녀도 봤다니 감개무량하다. 
요즘은 아이를 못 오게 하는 식당도 많고 카페도 많다.

몇 주전 결혼식에 가다 좀 일찍 도착하여 카페에 들어가려는 데 ‘노키즈존’이 붙어있었다. 음식점, 카페 같은 곳에서 영유아나 어린이를 동반한 손님들의 출입금지를 의미하는 우리나라의 신조어다. 아이가 식당에 가면 피해를 줄 것 이라는 가능성을 근거로 아이들을 배제시키는 것 같다. 물론 외식을 하러 가면 자식을 잘 챙기며 대화하며 음식을 먹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식당을 마냥 뛰어다녀서 위험해도 그냥 놔두는 부모가 있다. 카페에 데리고 가서도 아이들이 시끄럽던 말던 신경도 안 쓰고 자기네끼리 수다 떠는 사람도 있다. 주인들은 제멋대로 행동하는 이 모습을 보고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여 아이들이 다칠까 봐 걱정하며 아이들을 뛰지 않게 조심시키라고 한다. 자신의 아이들을 지나치게 옹호하는 어떤 부모 손님은 이 말을 듣고 또 서운해 하고 기분나빠한다.

그러니 ‘노키즈존’은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들 데려오지 마라’보다 개념 없는 어른들에게 ‘자기아이 제대로 단속하지 못하고 남들에게 피해를 주려면 아이 데리고 오지 마라’에 가까운 것 같다. 우리나라는 옛부터 정이 많은 민족성인데 어쩌다 이리 인정머리 없이 이기적인 면이 많아 졌는지 모를 일이다. 부모가 되어 자기 아이들 데리고 함께 식사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상황인데 ‘노키즈존’을 내걸고 영업하는 음식점 주인의 서비스가 손님에게 인색한 건지 또 손님을 배려해주는 건지 참 애매하기 짝이 없다. 세월이 변하여 환경도 변하니 맞춰 가야하는 건지 씁쓸하기만 하다.

우린 수다로 길어진 식사를 마치고 산책길에 나서며 품바 체험촌을 둘러보았다. 아이들이 와서 뛰어놀고 아이와 함께 여러 가지 체험도 하기 좋은 곳이다. 간혹 엄마 손잡고 뛰는 아이들이 보여서 좋았고 ‘노키즈존’이 아니라서 좋았다. 우리가 아이들 키울 때처럼 ‘노키즈존’이 없는 나라에서 아이들이 자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노키즈존이든 키즈존이든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것, 어른들이 책임져야 할 뿐.

어쨌거나 오랜만에 만난 우린 가을빛을 듬뿍 먹으며 걸었다. 기분 좋은 저 하늘을 바라보며.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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