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세상사는 이야기] 잊혀진 계절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18.10.30 16:04
  • 기자명 By. 충청신문
강희진음성예총 부회장
강희진음성예총 부회장

외출 하던 중 집에 두고 온 것이 있어 지름길로 돌아가려다 발이 묶였다. 사다리차를 세워두고 놀이터에 심어진 나뭇가지를 자르고 있었다. 낙엽이 도로 쪽으로 많이 떨어지니 아예 나뭇가지를 잘라버릴 심산인 듯하다. 나뭇가지를 자를 때마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졌다. 늦었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빨갛게 노랗게 쌓이고 있는 낙엽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우수수 떨어 질 때마다 가슴 한 편이 허전해져 갔다.

가을, 가을이다. 그리고 10월의 마지막 날이다. 왠지 아침부터 까닭 없이 울림이 있더니 이런 장면을 보려고 그랬나보다. 이 아름다운 장면에 휴~ 한숨이 나온다. 낙엽은 짧은 절정을 맞고 곧 소멸하기에 쓸쓸하다. 그래서 한시적인 삶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가을을 사랑하고 쓸쓸해하고, 생로병사에 천착하며 사색하는 계절이다. 눈을 들어 어디를 보아도 아름답다. 오늘은 이 아름다움과 더불어 “10월의 마지막 밤”이란 가사가 담긴 노래를 매스컴에서 몇 번이나 들을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 학원을 다니던 시절 이 노래가 처음 나왔다. 사랑이라는 것도 해보지 못했기에 이별이 뭔지도 몰랐지만 우리는 재수생이라는 우리의 처지가 슬퍼서 이 노래를 무척 좋아했다. 학력고사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음악다방에 가서 ‘잊혀진 계절’ 노래를 신청해 들으며 고독해 했다. 마음에 맞는 학원친구 6명이 어울려 다녔다. 그리고 다음해에 우리들은 각각 흩어져 대학에 들어갔지만 자주 만났고 10월의 마지막 밤은 늘 같이 보냈다. 그런데 우리가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한 사건이 터졌다. 

우리는 젊었고 사랑에 눈뜰 시기였다. 친구 A가 친구 B를 많이 좋아 했는데 4년 동안이나 B는 별 반응이 없어 우리조차도 헤어진 것인지 사귀는 것인지 헛갈렸다. 그러다 6명의 멤버 중 한명인 C가 서울로 취업이 되어 떠났다. 먼저 서울 생활을 한 A와 가끔 만나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지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 해 10월의 마지막 밤 함께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그들은 서울에서,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소도시에서 만남을 가졌다. 그런데 친구 B가 A의 소식을 듣더니 초저녁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밤 10시가 조금 지난 후 그녀는 결국 쓰러져 119를 타고 병원에 실려 갔다. 당황한 나는 A에게 전화를 했고 C와 함께 있던 A는 택시를 타고 서울에서 내려왔다. A와 C는 요즘 말로 막 썸을 타고 있는 중이었는데 옛정이 더 애틋했었는지 그 밤에 내려와 그녀 곁을 지켰다. 그 일이 있는 후 속속들이 사정을 알았던 친구들은 A의 행동을 비난하고 전화를 한 내가 잘 못 했다는 의견과 사정을 잘 알면서 썸을 탔던 C가 잘 못 했다는 의견이 엇갈리며 우리는 서먹한 관계가 되어 버렸다. 그때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실체는 절대적 강자였기에 그것으로 모임은 끝나버렸다. 

그래서 난 10월의 마지막 밤을 좋아하지 않았다. 애써 외면했다. 그러다가 순리라는 것을 이해하고 운명이란 것을 믿게 되면서 그 속에 갇혀 상처 받은 일을 그만두었다. 

우리 모두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좋아한다. 달력을 보면 한 달에 몇 번은 OO날이다. 무심하게 지내다가도 “오늘이 OO날이야”하면 관심이 가고 그 의미를 한 번쯤 되새기게 된다. 그러니 그 노래가 나온 지 3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오늘만 되면 사람들은 10월의 마지막 밤에 의미를 둔다.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 날에 생긴 에피소드 하나쯤 있지 않을까 싶다. 특히 80년대에 20대를 보낸 사람들은 말 할 나이가 없을 것이다. 

오늘 밤에는 음성군과 음성예총이 함께 버스킹 공연을 한다는 문자 메시지가 들어왔다. 내가 좋아하는 그룹도 포함되어 있다. 가서 마지막 가을의 정취를 느껴보리라 그리고 유쾌하지 못한 10월의 마지막 밤을 오늘 공연으로 덧 입혀 새로운 시월의 추억 하나를 만들어 보리라.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