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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가을걷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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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11.06 15:56
  • 기자명 By. 충청신문
변정순음성수필문학회 회장
변정순음성수필문학회 회장

사방천지 꽃단풍이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어떻게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황홀함으로 11월을 뽐내고 있어 내내 붙잡아 두고픈 심정이다. 

가을빛을 쐬며 호사를 누리는 지금, 법회가 끝나고 하루가 지나감을 이렇게 안타까워하며 평상에 앉았다. 고소한향이 코끝을 찌른다. 절 마당에는 들깨를 일어 널었다. 한 세 말 정도는 되는가 싶어서 보살님께 여쭤봤드니 네 말은 된다고 하시며 여름날이 너무 더웠던 탓에 생각보다 적게 나왔다고 한다. 봄은 짧았고 올 여름처럼 길고 더운 날씨에도 잘 견디어 요렇게 잘 여문 들깨가 멍석에 널려있는걸 보니 노 보살님들의 노고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음을 짐작케 한다. 우리 사찰에서 공양하는 채소나 양념은 거의 신도들이 농사를 지어 자급자족하고 있는 편이다.

지난주에 우리도 텃밭에 농사지은 고구마를 캤다.

이른 봄에 마을선생님과 공동수업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텃밭 가꾸기 체험을 하도록 하였다. 두둑을 만들어 거름을 뿌린 후 비닐을 씌웠다. 그곳에 상추와 고구마를 심었고 잘 자라도록 조를 짜서 교대로 물을 주었다. 아이들이 직접 심고 가꾼 상추는 적당한 크기가 되었을 때 이틀에 걸쳐 뜯어서 저장해 두었다가 전교생이 모여 삼겹살 파티하였을 때 먹게 하였다. 

고구마는 네 골을 심었는데 시원찮게 영글어서 세 박스 밖에 못 캤다. 잘 여물었으면 세배는 캤을 텐데. 방학동안 물을 얻어먹지 못하여선지 줄기는 많이 퍼지지 않았고 고구마는 속으로만 깊게 박혀 호미로 캐기가 어려웠다. 개중에 일부 학생이 삽을 가져와 두둑 가를 파주어 덜 힘들게 고구마를 꺼냈다. 학생들은 대부분 처음 해보는 고구마 캐기 체험인데도 힘들 다면서도 다행히 즐거워했다. 어떤 학생은 공부하는 것보다 좋다고 하고 어떤 학생은 고구마를 흙만 대충 털고 호미로 껍데기를 긁어내어 주기도 하였다. 심고 가꾸고 거둬들이는 일이 힘들지만 신기하고 기쁘다고 말하는 아이들에게는 경험만으로도 공부가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오늘 스님의 법문 중에 “아이들에게 학교공부도 중요하고 여러 가지 체험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고 성장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인간의 도리’ ‘인간의 윤리’를 가르쳐야 한다는 법사스님의 법문이 가슴에 와 닿는다. 내 자식에게 지나친 참견과 지나친 방치로 멀쩡한 아이들이 삐뚤어지는 경우가 많으니까.

고구마 한포기를 심더라도 거름을 주고 잘 정비된 밭에 튼실한 모를 심고 관심을 가져 주면 잘 자라서 영글듯 자녀에게도 적당한 관심을 갖고 지지를 해준다면 저절로 잘 영글어 자식 농사도 풍년 되지 않겠나.

벌써 특성고에 진학하는 3학년 학생들은 자신의 적성에 맞추어 상급학교에 원서를 써내고 면접 준비로 가을걷이를 슬슬 하고 있다. 자신의 적성에 맞는 과를 선택하여 즐겁게 학교생활 할 수 있는 고등학생이 되면 좋겠다. 

어느새 고운 가을빛은 들깨멍석 끝자락에 앉아 있다. 노 보살님은 들깨를 다독거리며 하루만 더 말려서 들기름도 짜고 들깨기피를 낸다고 한다. 가을걷이로 분주하다. 올겨울 공양간은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겠구나. 

나도 슬슬 가을걷이를 시작해야겠다. 일상적인 일에 매달려 정신없이 살다보니 귀하고 소중한 것을 잊고 살았다. 우선 그동안 소원한 친구에게 가을낙엽편지 띄워 보내야겠고 그리고 다음엔 아이들과 함께 거둬들인 못생긴 고구마튀김을 준비해야겠다.

금빛단풍이 유혹하는 날, 가을걷이로 참 행복한 날이다.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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