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단 “친일 시인 경멸한 오장환의 시 정신에 어긋나”
[충청신문=보은] 김석쇠 기자 = 충북 보은 출신으로 한국 시단의 3대 천재로 불리는 오장환 시인(吳章煥·1918~1951)을 기리기 위해 시행하는 ‘오장환문학상’이 심사위원 자격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보은문화원은 지난 2008년 오 시인의 시 정신을 널리 알리는 한편 한국 문단에 창작 의욕을 불어 넣기 위해 ‘오장환문학상’을 제정한 뒤 매년 1명씩, 올해까지 모두 11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보은문화원은 국내 유수의 출판사와 이 상을 공동 주관해 수상자에게 상패와 1000만원의 시상금을 안겼다.
그러나 올해 이 문학상의 심사위원 가운데 문단 내 대표적인 친일파로 알려진 서정주 시인을 기리는 ‘미당문학상’ 수상자가 끼어 있어 비판의 소리가 나온다.
단 한 줄도 친일 시를 쓰지 않았던 오 시인은 친일파 시인 가운데서도 특히 미당(서정주)을 경멸하며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던 시인으로 알려졌다.
이런 관계를 무시하고 오 시인을 기리는 문학상의 심사위원으로 버젓이 ‘미당문학상’ 수상자가 번번이 포함된 사실에 문단은 비판을 넘어 분노하는 분위기다.
한 계간 문예지 대표인 A 시인은 “친일파 문학인들과는 거리가 먼 오 시인을 기리는 문학상의 심사를 그가 가장 싫어했던 서정주를 기리는 문학상 수상자가 또 했다는 사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A 시인의 말처럼 ‘미당문학상’ 수상자가 ‘오장환문학상’을 심사한 경우는 이번뿐만이 아니다.
지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오장환문학상’(8, 9, 10회) 심사위원에도 역시 ‘미당문학상’ 수상자가 포함돼 있다.
특히 ‘미당문학상’ 수상자뿐만 아니라 이 상을 심사했던 시인들도 역대 ‘오장환문학상’ 심사를 무려 여섯 번이나 맡았다.
올해까지 11명의 ‘오장환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동안 ‘미당문학상’ 수상자나 심사위원이 아닌 사람이 ‘오장환문학상’을 심사한 건 겨우 두 번뿐이다.
이런 이유로 올해 초 문단에서는 오장환 시인을 기리는 문학제나 문학상에 ‘미당문학상’과 관련 있는 시인들을 배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일었다.
그러나 이 같은 문단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오장환문학상 운영위원회는 올해 보란 듯이 ‘미당문학상’ 수상자를 ‘오장환문학상’ 심사위원으로 또 선정했다.
이는 친일파 문학인을 멀리했던 오 시인을 기리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시대적 정신을 욕보이는 문학상을 만드는 행위라고 문학인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한국작가회의 소속인 B 시인은 “오장환문학상이 친일파 문학인을 경멸했던 오 시인을 기리는 문학상이 아니라 친일파 문학인들과 다름없는 시인들의 문단 내 권력을 유지하는 도구로 전락하는 느낌이다”며 “이치에 맞지 않는 심사위원 선정을 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관해 오장환문학상 운영위원장인 신경림 시인은 “당시 건강이 좋지 않아 심사위원 선정에 관여하지 못했지만, (운영위원들이) 주의를 하는 게 좋을 뻔 했다”며 “이유 있는 비판이니까 반론할 생각이 없고, 다른 운영위원들에게 참고하도록 얘기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