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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포럼] 12월과 시간의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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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11.29 22:29
  • 기자명 By. 충청신문
이노신 호서대 인문융합대학 교수
이노신 호서대 인문융합대학 교수

이제 2018년 올해도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각자 그동안 걸어온 삶의 모습이 제각기 다르지만 어쨌든 모두에게 남은 올 한 해의 시간은 이제 한 달이다. 사실 시간이라는 개념을 만든 뒤 1년을 12개월로 나누고 또한 각 달마다 절기를 정한 이유는 농사를 제때에 짓기 위해서 였다. 인간이 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한 흔적이 약 9000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므로 아마도 그때부터 시간에 대한 개념이 서서히 잡혀 갔을 것으로 보인다.

올 12월에는 대설과 동지가 끼어 있다. 하늘에서 비가 내려야 농사를 짓던 천수답 시절에는 대설 절기에 눈이 많이 와야 이듬해 농사에 가뭄이나 병충해가 덜하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터득하였다. 또한 동지에는 붉은 팥죽을 먹어야 건강하고 이듬해에도 농사일을 잘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사실 이러한 것들은 점점 잊혀 간다.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도시인들에게 절기는 그다지 의미가 없어 보인다. 설령 농업을 한다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지구 반대편에 위치해 계절도 정 반대인 칠레나 브라질에서 농산물을 수입하거나, 국내에서도 한 겨울에 온실재배를 통해 사철 작물들을 재배하고 수확한지 꽤 오래되었다.

즉, 먼 오래전 우리의 조상들이 농사짓고 먹고 살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시간이라는 거대한 틀이 크게 흔들리고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흔들림과 변화의 강도는 더 세지고 있다. 속도 또한 더 빠르다. 20세기 초반까지 인간들의 평균 수명은 약 40세였다. 따라서 운이 좋아 자손을 남기게 된다면 10대에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30대 쯤에 자식을 결혼시켜 손주를 보면 40세를 더 넘겨 50정도 까지 살다가 사망했다. 백세시대를 향해 가고 있는 현재와 비교해 보면 언제 그런 시대가 있었나 싶을 정도이다.

시간은 신과도 매우 관계가 깊다. 신과 신들의 이야기인 신화는 인간이 만들었다. 그리고 그러한 신화 이야기 속에서 작가인 인간은 신들이 만든 창조물이 되었다. 한자로 신을 神으로 적는다. 글자에서 왼쪽의 글자인 示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든 제단(ㅜ)위에 제물을 얹어 놓은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리고 하단 양쪽으로 내려온 여덟 팔(八) 모양은 그 제물에서 흘러내리는 핏물이다. 우리가 현재 이 글자를 보일 시라고 읽고 있는데, 이렇게 신에게 제물을 바치면 신이 강림하여 무당의 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오른쪽의 글자는 매우 흥미롭다. 왜냐하면 날 일(日)자를 수직선이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날 일은 곧 시간을 뜻한다. 즉 인간은 신이란 시간을 꿰뚫고 초월한 만유의 존재라고 믿었다. 그러한 존재에게 제물을 바쳐 제사 드리는 모습이 바로 한자의 神으로 형상화되었다.

이것은 서양의 대표 신화인 그리스로마신화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신들의 왕인 제우스는 원래 그냥 신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제우스가 진정한 신이 되기 위하여 할아버지인 우라누스를 왕좌에서 내쫓고 자신이 왕이 된 그의 아버지 크로노스를 이겨야 했다. 여기서 우라누스는 공간 또는 하늘이라는 의미이며, 크로노스는 바로 시간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결국 제우스는 아버지를 이기고 신들의 왕이 되는데, 따라서 제우스 즉 신의 진정한 의미는 공간과 시간을 초월한 존재를 말한다.

이러한 신들의 이야기를 인간이 약 4000 년 전부터 만들어 내었다. 만일 이런 얘기들이 흥미가 없었다면 한 동네의 민담이나 전설로 전전하다가 사그라져 버렸을 텐데 이미 전 세계로 퍼져 최고의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지 오래이다. 이야기를 읽을 때 무언가 무의식 속에서 당기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실 시간의 틀에서 벗어나기를 원할지도 모른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인간은 모두가 죽는다는 것은 아직까지는 운명으로 받아들여지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선택사항이 될지도 모른다고 기술하고 있다. 즉 수명이 대폭 연장되어 200세 또는 500세까지 살게 된다면 그동안 인간들이 꿈꿔왔던 신의 경지에 어느 정도 이르게 될지도 모르겠다. 20세기 초반까지 40-50세가 운명에 가까운 수명이었던 인간은 현재 100세를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으니,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다.

현재의 인공지능기술과 3D 프린팅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될 2030년 시대가 오면 인체의 한 부분을 마치 자동차의 부품을 교체하듯이 바꿀 가능성도 있을 것 같다. 또한 현재 엔진오일이나 트랜스미션 오일, 브레이크 오일 교체하는 것처럼 인체의 혈액이나 림프액 등을 필요하면 앞으로 교체할 수 있는 날도 오지 않을까 한다.

먼 옛날 과거 농사를 짓기 위해 12진법을 사용했던 흔적인 12월은 시간의 순환주기로서 아직도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의 틀은 이제 점점 더 깨지고 있다. 마지막을 의미하는 12월을 초월하여 영원 속으로 무한히 뻗어가고 싶은 인간의 욕망과 열정이 끊임없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노신 호서대 인문융합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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