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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벙어리장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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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12.05 15:40
  • 기자명 By. 충청신문
김정호백제문화원장
김정호백제문화원장

올겨울은 유난히 추울 거라고 한다. 여름은 그렇게 무덥더니, 한파 걱정이 야속하다. 그렇다고 손을 마냥 주머니에 찔러 넣고 다닐 수도 없다. 가방도 들어야 하고 전화도 받아야 하고 겨울에도 우리의 두 손은 바쁘다. 겨울에는 뭐니 뭐니 해도 장갑이 최고다. 

장갑은 손을 보호하거나 추위를 막거나 장식의 용도로 낀다. 형태상으로 5개의 손가락을 분리해 놓은 글러브(glove)와 엄지만을 분리한 미튼(mitten)으로 대별된다. 야구의 글러브와 미트가 그렇다. 재료에 따라 가죽, 헝겊, 편물, 고무, 비닐 등이 쓰인다.

고무장갑을 끼고 김장을 거들다가 잠시 벗었는데, 뒤집혀서 다시 낄 수가 없었다. 옆 사람이 공기를 불어넣고 힘을 주니 쉽게 다섯 손가락이 나왔다. 생활의 지혜가 놀라웠다. 

장갑은 휴대품이다. 잘 잃어버린다. 버스나 식당에는 주인 잃은 장갑이 있다. 두 짝을 다 가지런히 놓고 나오는 경우도 있고, 한 짝만 덩그러니 남은 경우도 있다. 장갑은 소모품이다. 한 시즌 이상 끼기가 힘들다. 착용감과 내구성이 생명이다. 잘 더러워지고 잘 젖는다. 공장 빨래 건조대에는 장갑들이 걸려 있다. 장갑을 빨아 너는 풍경은 짠하다.

장갑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손을 보호하는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패션 아이템이 되었다. 일, 스포츠, 예복 등등 다양하다. 결혼식에는 하얀 장갑이 도드라진다. 신랑, 신부, 양가 부모, 주례가 모두 하얀 장갑을 낀다. 행사장 테이프 커팅에도 하얀 장갑은 필수도구다. 

장갑은 특수 기능을 수행한다. 스마트폰 장갑, 방화장갑, 방수장갑, 스키장갑, 골프장갑, 권투장갑, 코팅장갑, 등산장갑…. 핑거리스 장갑은 손가락 부분을 다 덮지 않은 아이디어다. 손가락 부분을 노출시켜 핸드폰으로 문자를 쓴다든가 작은 물체를 잡을 때 실용적이다. 의료용 장갑은 혁신이다. 오염 없이 주사도 놓고 수술도 한다. 연구용 표본을 위생적으로 가공 처리할 수 있게도 되었다. 양말과 장갑이 결합해 발가락 장갑도 등장했다. 

장갑 없는 인류 문명은 삭막하다. 인류는 장갑을 의복으로 생각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패션 액세서리로 활용해 왔다. 유럽 상류 사회에서 남성들이 사용하다가 여성들의 생활용품으로 보편화되었다. 보석과 자수로 장식을 했다. 남성이 장갑을 상대방에게 벗어던지면 도전을 의미했다. 여성이 장갑을 건네주면, 호감을 의미했다.

우리나라에는 토시가 있다. 손목을 보호하거나 추위를 막기 위해서 팔뚝에 꼈다. 작업용 토시는 안전용품이다. 사무용 토시는 능률을 높인다.

아내가 좋아하던 흘러간 노래 중에 “검은 장갑 낀 손”이 있다. “헤어지기 섭섭하여 망설이는 나에게 굿바이 하며 내미는 손 검은 장갑 낀 손~” 할 말은 많아도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서는 내 모습을, 이미지가 강렬했다.

장갑의 시작은 벙어리장갑이다. 엄지손가락만 따로 가르고 나머지 네 손가락은 한 군데에 함께 들어간다. 장갑 속에서 네 손가락이 꼼지락대며 우린 함께 있어서 따뜻하다고 한다. 엄지손가락은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며, 엄지끼리 맞대며 으스댄다. 유치원생 손녀를 가진 사람은 백화점 진열대 벙어리장갑을 지나치지 못한다. 손녀에게 사주고 싶다. 고사리 손 호호 불며 눈썰매 타던 추억, 유아 벙어리장갑은 정말 귀엽다. 

그런데, 왜 이름이 벙어리장갑일까? 몇 년 전 어느 사회복지법인 캠페인이 떠오른다. 손모아장갑으로 표준국어사전에 올리자고 했다. 누구는 엄지장갑으로 하자고 제언한다. 의도와 상관없이 일상에서 사용되는 말이지만, 장애인에 대한 비하가 스며있기 때문이다. 절름발이식 행정, 눈먼 돈, 눈 뜬 장님, 꿀 먹은 벙어리 같이 직접적인 비하의 의미이기보다 주로 속담이나 관용구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무심코 습관적으로 또는 대체할 말이 안 떠올라 쓰는 경우가 많다. 머쓱하다. 단어 하나가 바뀌면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뀐다. 무심코 사용한 말에 상처받고 차별받는 이가 없었으면 한다. 

손 내밀면 더 따뜻해진다.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데, 우리 사회는 벙어리장갑에서 엄지장갑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 그 문턱을 넘기가 이리 어렵다. 우리에게는 바꾸어야 할 말과 이야기가 많다. 강력한 생각은 현실이 되고, 힘이 된다. 
장갑을 늘 끼고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손을 움직여 살아가야 하는 여정이다.

청소하시는 아주머니, 우유배달부, 택배 기사, 장갑이 긴요한 사람들이 많다. 추운 겨울, 장갑 한 켤레, 따뜻한 송년을 생각한다. 

장갑을 낀 손은 소중하다. 호주머니에서 손 빼고 팔 흔들며 씩씩하게 걷자. 엄지장갑, 엄지 척!

김정호 백제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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