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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포럼] 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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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12.06 15:49
  • 기자명 By. 충청신문
박상희피아니스트
박상희피아니스트

문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쉼표는 누군가를 부르는 말 뒤에, 혹은 긴 문장을 쉬어가며 읽을 수 있도록 숨을 틀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역할을 한다. 

음악에서도 역시 쉼표란 소리가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음악에서 쉼표는 글에서와는 달리 지정된 길이가 있는데, 그 시간 동안 반드시 쉬어야한다. 연주했던 음의 길이가 남아있거나, 페달이나 운지에 의하여 소리가 섞이지 않게 빈 공간을 만들어야한다.

연주자에게 쉼표를 연주하는 것은 소리를 내는 것보다 어렵고, 진중한 작업이다.

단순히 '연주를 하지 않음'으로 풀이될 것 같은 이것은 제대로 연주하기가 보기보다 녹록치 않다. 쉼표의 길이를 안다고 해서, 숫자를 세고 붙였다 떼는 것으로 표현 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쉼표를 배울 때 참 난감할 것이다. 자신은 배운 대로 연주했는데 옆에 앉은 선생에게 늘 ‘그것이 아니라!’라고 지적을 당할 테니 말이다.

음악의 쉼표는 단순한 길이만을 표현하지 않는다. 호흡 안의 뉘앙스까지 표현이 되어야한다.

그 순간을 제대로 비우기 위하여 전에 연주되는 음의 깊이와 길이에 대한 설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울리는 음을 얼마만큼 끌어내었다가 에너지를 소실시킬 것인지, 악기에서 손의 힘이 분리되는 시점, 그리고 호흡을 어느 세기와 속도로 뱉어낼 것인지에 따라서 쉼표의 연주가 달라진다.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그려지는 쉼표의 순간도 있는가 하면, 음표 사이의 뜻을 헤아려야만 보이는 것도 있다. 침묵의 순간을 만들기 위한 작업은 보통의 기량으로 될 일은 아니다.

이 쉼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순간이다.

움직임의 시작되기 전의 고요함이나, 엄청난 파열음 뒤에 남는 침묵, 동체가 공중에 머물러 있는 듯한 무중력 상태와 같은 순간 등이 바로 그것이다.

많은 음들 사이에 들리는 그 공간은, 바쁘게 흐름을 쫓는 사이에 잠시 걸음을 멈추게 한다. 간혹 흐름의 방향을 바꾸기도 하며, 음이 연기처럼 공중에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보이게도 한다.

육중한 음들 사이의 쉼표는 그 음의 단호함을 돋보이게 하고, 긴장감을 배가시킨다. 감상자에게 다음 악구를 맞이할 여유를 주기도 한다. 여러 마디에 걸친 긴 쉼표가 주는 여운은 탄성을 끌어낼 정도로 감동적이다.

많은 음악가들은 이 정적인 순간을 너무나 사랑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 A. Mozart)는 ‘음악은 음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의 쉼에 있다’고 말했다.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András Schiff)는 그의 에세이에서 '음악은 고요에서 나온다.'라는 말을 남겼다.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브렌델(Alfred Brendel)은 '음악을 제대로 들으려면 침묵이 필요하다. 음악에서 모든 것은 그 침묵 위에 축조된다.'라고 하였다.

재즈의 거장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도 '음악에서 소리보다 중요한 것은 침묵이다.'라며 쉼에 대한 철학을 보여주었다.

이상하게도 처음엔 이 쉼표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려진 여백으로서 인지는 되지만, 표현을 제대로 하기까지는 축적된 많은 시간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드디어 제대로 숨을 쉬었을 때 그려지는 긴 호흡의 선율은 그간 얼마나 이 곡을 겉으로만 다루었는지 깨닫게 한다. 그 짧은 순간에 최대한 보여주려 했던 많은 음들과 기교들은 과연 진정한 음악이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숨을 쉼으로써 작곡가의 말이 들리는 듯한, 그 순간에 교감이 일어났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제야 비로소 음악이 한줄기로 엮어진다. 이야기의 맥이 생기는 것이다. 쉼이 없는 음악이란 얼마나 영혼이 없는 것인가.

오히려 비어있기 때문에 채울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달리다가도 쉬어야 하는 순간이 있다. 굳이 눈에 보이는 실체가 없더라도 생기는 감동이 있다. 

가만히 곁에만 있어도 좋은 것들이 있다. 멈춰있기에 보이는 것들이 있다. 들리는 것이 있다. 침묵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 사이를 흐르는 바람의 결이 느껴질 때가 있다.

쉼이라고 표현하지만 결코 아무것도 아닌 상태가 아닌 소리와 침묵의 만남, 그 아름다운 순간을, 그 깊이와 무게를, 음악에서처럼 곳곳에 심어두시기를.

 

박상희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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