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을지 빵을 먹을지 부터, 출근 할 때 그날의 가장 어울리는 옷을 선택하고, 전철을 타야할지 버스를 탈지 순간순간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때로는 후회도 하고,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흡족해 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선택이 하루의 일진으로 끝나지 않고 일생을 좌우하는 선택이라면 어떨까? 물론 신중해 질 것이다. 그래도 결정을 하기가 어려우면 인생의 선배에게 상담도하고 때로는 종교적인 힘을 빌리기도 하며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애쓴다.
또 다시 졸업시즌이 돌아왔다. 큰 아이처럼은 아니지만 졸업을 앞둔 작은아이에게 온통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아이에게 부담을 줄까봐 애써 무관심 한 척 하고 있다. 어제는 내 생일이라고 아이가 내려왔다. 저녁을 먹으면서 흥분해서 이야기를 했다. 친구 한명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두 군데에 동시에 합격을 했단다. 두 군데 다 들으면 아는 기업이었다. 요즘 같이 취업하기 힘든 때 얼마나 좋겠다고 했다. 그런데 작은아이가 그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었다. 자기 같으면 고민 할 필요도 없이 대기업에 갔을 것인데 그 친구는 고민하다 중소기업으로 갔다고 했다. 그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기업의 가치와 자신의 신념이 맞는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단다.
저녁상을 물리고 치킨과 맥주를 마시면서도 그 친구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로 갑론을박을 했다. 큰아이는 요즘 세상에 좀처럼 보기 힘든 멋진 아이라며 꼭 성공을 하겠다고 했고, 나는 양손에 떡을 쥐었으니 무엇을 선택하든 부럽다는 표현을, 남편은 혹시 경쟁을 두려워하는 소심한 성격의 아이냐고 물었다.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아이의 선택은 일생일대의 큰 획을 긋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선택에 행복해 할지 후회 할지는 아직 모른다. 그 결과는 10년 후 아니 어쩌면 그 보다 훨씬 뒤에 알게 될 수 도 있다. 하지만 소신껏 선택을 했으니 최선을 다해 살아 갈 것이라는 생각은 한다.
얼마 전에 교육을 갔다가 들은 이야기다. 소크라테스에게 한 학생이 물었다고 한다. “ 스승님, 인생이란 무엇입니까?”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을 데리고 사과나무가 있는 숲속으로 갔다. 그리고는 “ 숲 끝까지 걸어가면서 마음에 드는 사과를 하나씩 골라오라고 했다. 그리고 선택한 뒤에는 되돌릴 수 없다고도 했다. 선택은 단 한번뿐이었던 것이다. 그러자 제자들은 각자 사과를 관찰하며 나름 가장 크고 좋은 것을 고르려고 노력했다. 미리 숲 끝에 도착해 있던 소크라테스 앞에 제자들은 사과를 가지고 모였다.
“마음에 드는 사과를 골랐느냐?” 묻자 한 학생은 숲에 막 들어섰을 때 정말 좋은 사과를 발견 했단다. 그런데 더 크고 좋은 것을 찾으려고 숲 끝까지 왔는데 처음 봤던 것이 가장 좋았다고 했다. 또 다른 학생은 숲에 들어서자 제일 크고 좋다고 생각 한 사과를 골랐는데 나중에 보니까 더 좋은 사과가 있어 후회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고르면 안 되겠느냐고 했다고 한다. 그러자 소크라테스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게 인생이다. 인생은 언제나 단 한 번의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미국의 시인 프로스트는 ‘가지 않는 길’ 이란 시를 썼다. 오래된 시이지만 그 시로 아직도 우리에게 프로스트라는 시인을 기억하게 한다. 노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중략
먼먼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밤늦게까지 기분 좋게 오른 취기로 각자 나름의 선택에 대한 철학을 이야기했다. 작은아이에게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던지 응원 할 것이다. 너의 선택에 책임을 지고 순간순간을 영원처럼 살아가라” 하고 엄마로서 뻔한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