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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행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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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12.25 16:40
  • 기자명 By. 충청신문
강희진음성예총 부회장
강희진음성예총 부회장

지난주에는 음성예총 일 년을 결산하는 예술인의 밤 행사가 있었다. 음성예총과 음성품바예술재생촌에서 창작 아카데미 수업을 진행해 왔는데 그 결실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수료증을 받고 그동안 배운 작품을 전시하고 공연 발표도 하여 흥겨운 한 때를 보냈다. 약 200명 정도의 회원이 모처럼 모여 지부별 장기자랑도 하고 젊은 보컬이 와서 흥을 돋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를 기대하게 하는 것은 가득 쌓여 있는 경품이었다. 

행운권을 나누어 주자 대부분 회원들은 이제까지 경품 당첨 경험이 별로 없는 듯 이번에도 되지 않을 거라고 하면서도 은근히 기대를 하는 눈치였다. 나 또한 10여 년 전 음성예총에서 실시한 야유회에서 마른고추 한 포대가 당첨이 된 후 아직까지 당첨되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내 행운권의 번호가 불러졌다. 그 희열이란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혹시나 놓칠세라 전속력으로 뛰어갔다. 자리에 와서 풀어 보니 국수였다. 기쁨을 실컷 만끽하고 당첨되지 않는 회원에게 건네주었다.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참으로 민망한 일이었다. 그래 체면도 없이 뛰어가 좋아라 날뛰었나 싶은 게…….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곁에서 지켜 본 회원이 전화를 했다. “참 인간적이었습니다. 점잖은 분이 그리 큰소리로 외치며 좋아라 하시다니요. 뭐가 들어 있던가요?”

나는 행사를 시작하기 전에 즐비하게 쌓여 있는 경품을 보고 저렇게 많은데 나에게도 행운이 오겠지 했는데 번호가 불리지 않았다. 옆자리를 쳐다보니 일찍 돌아가는 회원들의 행운권을 모두 받아 부채꼴로 펴고 앉아 있는 분도 있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경품은 그리 대단한 것들은 아니다. 작은 전기제품, 계절과일, 주방용그릇 등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행운이 왔다는 것과 포장에 쌓여 있는 선물을 개봉 할 때 무엇일까 기대되는 그 흥분 때문일 것이다. 

그리스 신화의 행운의 여신 티케 생각이 난다. 그녀는 뒷머리가 없고 앞머리만 있다고 한다. 앞머리만 있는 이유는 행운이 왔을 때 재빨리 붙잡으라는 의미고, 뒷머리가 없는 것은 기회가 지나갔을 때 붙잡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오늘밤 나는 티케의 앞머리를 붙잡은 것이다. 어쩌면 티케는 늘 내 앞에 앞머리를 드리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박만을 바라며 티케에게서 고개를 돌려 그녀의 뒷모습만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는 행운은 멀리 있다, 붙잡기 어려운 것이다, 하고 생각했다. 

사실 행운은 쉽게 오지 않기 때문에 행운이다. 행운이 만약 밥 먹듯이 쉽게 찾아오는 거라면 그것은 이미 행운이 아닌 권태로움이다. 티케라는 여신의 이야기가 곧 티켓의 어원이 된 것도 잡힐 듯 잡힐 듯 아슬아슬한 여운이라서 행운권으로 지칭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레던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내게 또 다른 생각이 스쳐갔다. 

행운이란 또 우리 곁을 수시로 지나친다는 걸 몰랐다. 살림에 필요한 전기용품 같은 게 행운의 전부는 아니다. 그보다 더 큰 행운은 가족 모두 건강하고 무탈하게 지낼 수 있는 거였다. 오늘 더 큰 행운에 당첨된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산 아이러니를 보는 것 같다.

일 년을 되돌아보면서 모두 함께 모여 정담을 나누고 새해에 대한 덕담도 나누면서 거기에 행운까지 더 해진다면 더 없이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작은 경품하나로 행복해지는 소소한 우리의 일상이 그래서 더욱 소중한 것은 아닐까. 

내년에는 모두 건강하고 행운 가득한 한해가 되시기를 기원 드린다.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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