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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또 한해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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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01.01 16:47
  • 기자명 By. 충청신문
변정순음성수필문학회 회장
변정순음성수필문학회 회장

마음 산책중이다.

동쪽 창가에 내려앉은 햇볕을 마주하며 허브차가 담긴 컵을 들고 내가 살아온 날들의 삶의 시간들을 조심스레 마시며 걷는다.

‘한 번씩 욕심을 버리고 노여움을 버릴 때마다 그래그래 고개 끄떡이며 순한 눈길로 내 마음에 피어나는 기쁨 꽃 맑은 꽃. 한 번씩 좋은 생각 하고 좋은 말 하고 좋은 일 할 때마다 그래그래 환히 웃으며 고마움의 꽃술 달고 내 마음 안에 피어나는 기쁨 꽃, 밝은 꽃.’ 여전히 분주하게만 살아온 나날들에게 난 무엇 때문에 살았는지 그래서 어떻게 잘 살아왔는지 물어보며 이 해인님의 ‘기쁨 꽃’이란 시를 음미해본다.

며칠 전 사찰등산모임에서 반 기문 생가 뒷산 큰산(보덕산)에 올랐다. 그동안 무릎이 아프다는 핑계로 어쩌다 둘레길만 걸어왔는데 산행을 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아주 큰 일이였지만 일행을 따라 간신히 오르긴 했다. 사실 등산하는 것을 싫어하는데 요즘 마음이 우울하고 축 쳐져 있는 날이 많아서 그 곳에 정기를 받고 싶어 무조건 따라나선 것이다. 많은 풍수사들은 이 산의 형세를 고아한 학이 많은 사람을 등에 태우고 비상하는 선학인가형 으로 표현하였고 산 아래 행치마을은 정상봉우리 중심으로 좌청룡 우백호의 산줄기가 감싸고 있어 그 지기가 행치마을의 연못에 모아져 예로부터 큰 인물이 나올 것이라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실제로 여기에서 반 기문 유엔사무총장이 배출되었고 또 앞으로 훌륭한 분이 더 많이 탄생 할지도 모를 일이다.

영하 10도 가까이 되는 날씨에도 보덕산 정상에 오르니 온 몸이 땀범벅이 되었다. 그런데도 춥기보다 시원했다. 그 추운 날에 무슨 비장한 각오가 있는 사람처럼 좁은 산길을 따라 가파른 산을 숨 가쁘게 올랐는지 지금생각해도 신기하고 나 자신이 대견했다. 우린 산꼭대기 정자에 올라 절경을 내려다보며 소원도 빌었다. 소원이라 함은 그저 가족의 안녕과 돌아오는 새해에 ‘괜찮은 사람’ 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소구소원이었다. 올 정초에도 남들에게 괜찮은 사람이길 인정받으며 살길 소원했지만 살다보니 내 뜻대로 된 일이 많지 않아 면구스럽기까지 하였다. 다시 사방을 둘러보는 동안 땀이 말라 춰지기 시작하여 부지런히 산을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이 더 어려워 옆으로 가는 폼이 꼭 게가 기어가는 폼이었다. 등산화대신 운동화를 신어서인지 가랑잎에 미끄러지기도 하고 다리가 헛놓여 제멋대로 디뎌졌고 초보등산객의 기본도 지키지 않고 섣부른 산행이 무릎에도 무리가 갔다. 오를 때보다 내려 갈 때가 더 어려웠다. 어쩌면 우리네 삶도 이와 똑같은 것 같다. 수십 년 간 공직생활에서 정년퇴직을 하는 지인은 속이 시원할 줄 알았는데 너무 서운하고 허하다고 하였다. 주인이 아니라면 누구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고용된 사람은 정년이 되면 일터에서 떠나야한다. 이분도 이제 아무데도 소속 돼 있지 않다는 현실에 많이 허전해 하는 것 같았다. 정말 그렇게 오랫동안 몸담은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은 무척 섭섭할 것 같다. 그 속에서 희로애락이 모두 있었을 테니까. 그러나 고용정년은 끝났지만 자신이 찾아 정하는 다른 일의 정년이 기다리고 있지 않나싶다. 힘겹게 산에 올라 내려올 때는 더 조심스럽게 발을 디디며 내려와야 잘 내려오는 것처럼 인생에서도 내려 갈 때를 받아들이고 정하는 마음 또한 아름다운 모습일 것 같다.

허브에 다시 따뜻한 물을 붓는다.

이런 저런 일이 많았던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며 사색하고 있다. 잘못된 일은 반성하고 잘 살아서 수고했다고 나 자신을 토닥여주며 한해를 마무리하는 내 마음에는 어떤 일로 기쁨 꽃이 피었고 무슨 일로 웃음꽃이 피었을까. 그건 직장에서 나로 인하여 웃는 아이를 바라 볼 때였을 것 같고 그중 자연 속을 산책하는 일도 나의 기쁜 일중의 하나였다. 최근 들어 더 잘한 일은 보덕산을 올랐던 일이다. 나는 못한다고 엄두도 내지 않았던 산행에서 기쁨, 웃음, 맑음 그리고 천천히, 조심히 라고 자연에게서 또 지인에게서 한수를 배웠다.

많은 이에게 ‘괜찮은 사람’ 이고 싶은 나의 묵은 꿈을 새 꿈으로 다시 정하며 또 한해를 기쁘게 보내주련다.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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