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산책중이다.
동쪽 창가에 내려앉은 햇볕을 마주하며 허브차가 담긴 컵을 들고 내가 살아온 날들의 삶의 시간들을 조심스레 마시며 걷는다.
‘한 번씩 욕심을 버리고 노여움을 버릴 때마다 그래그래 고개 끄떡이며 순한 눈길로 내 마음에 피어나는 기쁨 꽃 맑은 꽃. 한 번씩 좋은 생각 하고 좋은 말 하고 좋은 일 할 때마다 그래그래 환히 웃으며 고마움의 꽃술 달고 내 마음 안에 피어나는 기쁨 꽃, 밝은 꽃.’ 여전히 분주하게만 살아온 나날들에게 난 무엇 때문에 살았는지 그래서 어떻게 잘 살아왔는지 물어보며 이 해인님의 ‘기쁨 꽃’이란 시를 음미해본다.
며칠 전 사찰등산모임에서 반 기문 생가 뒷산 큰산(보덕산)에 올랐다. 그동안 무릎이 아프다는 핑계로 어쩌다 둘레길만 걸어왔는데 산행을 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아주 큰 일이였지만 일행을 따라 간신히 오르긴 했다. 사실 등산하는 것을 싫어하는데 요즘 마음이 우울하고 축 쳐져 있는 날이 많아서 그 곳에 정기를 받고 싶어 무조건 따라나선 것이다. 많은 풍수사들은 이 산의 형세를 고아한 학이 많은 사람을 등에 태우고 비상하는 선학인가형 으로 표현하였고 산 아래 행치마을은 정상봉우리 중심으로 좌청룡 우백호의 산줄기가 감싸고 있어 그 지기가 행치마을의 연못에 모아져 예로부터 큰 인물이 나올 것이라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실제로 여기에서 반 기문 유엔사무총장이 배출되었고 또 앞으로 훌륭한 분이 더 많이 탄생 할지도 모를 일이다.
영하 10도 가까이 되는 날씨에도 보덕산 정상에 오르니 온 몸이 땀범벅이 되었다. 그런데도 춥기보다 시원했다. 그 추운 날에 무슨 비장한 각오가 있는 사람처럼 좁은 산길을 따라 가파른 산을 숨 가쁘게 올랐는지 지금생각해도 신기하고 나 자신이 대견했다. 우린 산꼭대기 정자에 올라 절경을 내려다보며 소원도 빌었다. 소원이라 함은 그저 가족의 안녕과 돌아오는 새해에 ‘괜찮은 사람’ 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소구소원이었다. 올 정초에도 남들에게 괜찮은 사람이길 인정받으며 살길 소원했지만 살다보니 내 뜻대로 된 일이 많지 않아 면구스럽기까지 하였다. 다시 사방을 둘러보는 동안 땀이 말라 춰지기 시작하여 부지런히 산을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이 더 어려워 옆으로 가는 폼이 꼭 게가 기어가는 폼이었다. 등산화대신 운동화를 신어서인지 가랑잎에 미끄러지기도 하고 다리가 헛놓여 제멋대로 디뎌졌고 초보등산객의 기본도 지키지 않고 섣부른 산행이 무릎에도 무리가 갔다. 오를 때보다 내려 갈 때가 더 어려웠다. 어쩌면 우리네 삶도 이와 똑같은 것 같다. 수십 년 간 공직생활에서 정년퇴직을 하는 지인은 속이 시원할 줄 알았는데 너무 서운하고 허하다고 하였다. 주인이 아니라면 누구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고용된 사람은 정년이 되면 일터에서 떠나야한다. 이분도 이제 아무데도 소속 돼 있지 않다는 현실에 많이 허전해 하는 것 같았다. 정말 그렇게 오랫동안 몸담은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은 무척 섭섭할 것 같다. 그 속에서 희로애락이 모두 있었을 테니까. 그러나 고용정년은 끝났지만 자신이 찾아 정하는 다른 일의 정년이 기다리고 있지 않나싶다. 힘겹게 산에 올라 내려올 때는 더 조심스럽게 발을 디디며 내려와야 잘 내려오는 것처럼 인생에서도 내려 갈 때를 받아들이고 정하는 마음 또한 아름다운 모습일 것 같다.
허브에 다시 따뜻한 물을 붓는다.
이런 저런 일이 많았던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며 사색하고 있다. 잘못된 일은 반성하고 잘 살아서 수고했다고 나 자신을 토닥여주며 한해를 마무리하는 내 마음에는 어떤 일로 기쁨 꽃이 피었고 무슨 일로 웃음꽃이 피었을까. 그건 직장에서 나로 인하여 웃는 아이를 바라 볼 때였을 것 같고 그중 자연 속을 산책하는 일도 나의 기쁜 일중의 하나였다. 최근 들어 더 잘한 일은 보덕산을 올랐던 일이다. 나는 못한다고 엄두도 내지 않았던 산행에서 기쁨, 웃음, 맑음 그리고 천천히, 조심히 라고 자연에게서 또 지인에게서 한수를 배웠다.
많은 이에게 ‘괜찮은 사람’ 이고 싶은 나의 묵은 꿈을 새 꿈으로 다시 정하며 또 한해를 기쁘게 보내주련다.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