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시기] 기해년(己亥年), 돼지는 복과 재물을 부르는 존재
[세시기] 기해년(己亥年), 돼지는 복과 재물을 부르는 존재
  • 정완영 기자 waneyoung@dailycc.net
  • 승인 2019.01.01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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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 바치는 제물로 사용…탐욕·게으름 상징으로 비치기도

양산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있는 돼지 수호신 걸개그림.
양산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있는 돼지 수호신 걸개그림.(사진제공=통도사)

[충청신문=대전] 정완영 기자 = 돼지꿈을 꾸면 복권을 산다. 장사를 새로 시작하며 고사를 지낼 때는 상에 돼지머리를 올린다.

2019년 기해년(己亥年) 띠 동물인 돼지는 이처럼 전통적으로 복과 재물을 가져오는 존재로 인식됐다.

기해년이 황금돼지해가 되는 것은 천간의 기(己)가 토(土)에 해당하고, 토는 색깔로 따지면 노란색 또는 황금색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기해년은 육십 간지 중에서 36번째인 해로 보통 납음을 평지목으로 말한다.

돼지는 12지의 마지막 동물로서 시간으로는 오후 9시에서 11시, 방향으로는 북북서, 월로는 10월을 가리킨다.

오행으로는 물(水)에 해당하고, 잡귀를 몰아내는 신장(神將)이면서 인간과 가까운 친구다.

돼지는 예로부터 다산과 부의 상징으로 표현됐다.

돼지는 한 번 임신하면 보통 10마리 이상 새끼를 낳아 다산과 풍요, 부의 상징물로서 돼지는 인간과 함께 생활해 온 것이다.

'돼지꿈을 꾸었다'고 하면 횡재할 운이라며 사람들은 복권을 사고는 했다. 돼지를 복과 부를 불러들이는 상징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돼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벽화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동물이다. 인간이 정착생활을 하기 전부터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돼지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를 알려주는 능력자 혹은 신의 제물로 등장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벽화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동물이다. 인간이 정착생활을 하기 전부터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는 방증이다.

한반도에서도 석기시대의 멧돼지 화석이나 조개무지에서 출토된 토우에서 멧돼지 모양 동물형이 많이 나타난다. 이는 돼지가 가축으로 길들여지기 전부터 자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축으로 사육되기 이전은 지금의 멧돼지였다. 덩치가 커서 인간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인 사냥감으로 꼽혔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시점부터 인간은 사냥하는 것보다 사육을 통해 돼지와 더욱 가까워졌으리라 짐작된다.

인간과 가까워졌다는 의미는 그가 신화나 설화에 등장하는 동물로 녹아들었다는 의미와 상통한다. 실제 '삼국사기'나 '고려사'에 돼지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삼국사기'에서는 아들이 없던 왕에게 왕비를 점지해 주는 돼지가 등장한다. 산상왕은 산천에 기도한 후 꿈에 나타난 천신으로부터 후궁을 얻어 아들이 태어나리라는 예언을 듣는다. 몇 년 후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돼지가 달아나서 쫓아가 보니 한 처녀의 집이었다. 왕이 이 처녀와 관계해 낳은 아들이 고구려 동천왕이다. 신화 속에 나타난 돼지의 신성성이다.

능력자 돼지의 면모는 '고려사'에서도 확인된다. 왕건의 조부인 작제건(作帝建)이 중국으로 가다 섬에 표류했을 때 용왕 부탁을 받아 여우를 죽이고 돼지를 선물로 받았다.

1년이 지난 뒤 돼지가 우리에 들어가지 않자 왕건이 "이곳이 살 곳이 아니라면 네가 가는 곳으로 자리를 옮기겠다"고 했는데, 돼지가 새롭게 누운 장소가 고려가 도읍으로 삼은 개성 송악산 남쪽이었다고 한다.

최치원 설화에서도 돼지는 신성한 동물로 등장한다.

신라 어느 고을에 금돼지가 나타나 원님부인을 납치해 간다. 원님은 이 돼지가 사슴 가죽을 무서워한다는 얘기를 듣고 사슴 가죽으로 돼지를 물리치고 부인을 구해낸다.

이 일이 있은 후 부인이 낳은 아들이 바로 최치원으로 후세 사람들은 그를 '금돼지의 자손'이라 일컬었다. 고려까지 돼지는 왕실이나 민간 모두 신성한 동물로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민속학 측면에서 돼지는 복의 근원이며, 집 안의 수호신이라는 관념이 강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발소나 음식점 벽면에는 돼지 그림이 흔하게 걸렸다.

장사꾼들이 정월 첫 돼지[上亥]일에 문을 열며, 돼지그림을 부적처럼 거는 풍속은 모두 이러한 관념을 반영한 것이다.

돼지가 항상 긍정적 동물로만 생각되지는 않았다. 돼지는 탐욕스러운 성정, 즉 욕심 많고, 지저분하고, 어리석고, 게으른 성격을 비유하는 사례가 많다.

이러한 부정적 관념은 유대인과 이슬람교도에 많이 나타나고, 성서에서도 종교적 금기, 악마의 의도와 유혹의 상징으로까지 묘사된다.

동서양의 돼지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 보인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돼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대개 서양에서 전래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원래 우리 고유의 돼지에 대한 긍정 이미지에 후대에 들어온 서양 문화와 혼합돼 돼지의 긍정 이미지와 부정 이미지가 함께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 민족에게 각인된 돼지가 풍요로움을 가져다주는 존재라는 이미지를 뒤집기는 쉽지 않다. 돼지는 궁핍한 삶에서 중요한 식량원이자 복을 부르는 상징적 신호였다.

우리 조상들은 제의의 희생으로 돼지를 바쳤다는 기록을 많이 남겼다.

삼국사기 고구려 제사 편을 보면 멧돼지와 사슴을 잡아 제사를 올렸다고 기록하고 있고, 조선시대 기록인 '동국세시기'에도 12월 납향(한 해 동안 겪은 일을 고하는 제사) 제물로 산돼지를 바쳤다는 내용이 있다.

이는 돼지의 신성성과도 연결된다. 제의에 돼지를 쓰는 풍속은 고구려 때부터 시작됐다고 전한다. 이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상 한가운데에 돼지머리를 놓아야 비로소 의식의 격이 세워진다고 여겼다. 사람들은 신에게 소원을 빌고 절을 올린 후 돼지 입에 지폐를 물리는 행위를 통해 부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4000여 년 전부터 인간에게 사육되기 시작한 돼지는 동양에서는 대체적으로 신성한 동물로 인식되어 온 것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생활 깊숙이 연관성을 맺어 왔다. 가장 대표적인 연관성이 산과 고갯길에서 지명이나 형상, 또는 전래이야기 형태로 나타난다.

산은 신이 사는 장소로 신성시 여겨졌기 때문에 친근하고 신성한 동물일수록 산의 형상이나 지명, 전설이나 신화 속에 매우 자주 등장한다. 일종의 고대 토테미즘 일환이다.

이렇듯이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한 돼지해가 떠올랐다. 올 한 해도 많은 복을 지으면서 살아가는 해가 되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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