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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인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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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01.07 15:55
  • 기자명 By. 충청신문
이혜숙음성수필문학회장
이혜숙음성수필문학회장

체험학습. 말로만 학습한다고 떠나온 것이 아니라 직접 참여하고 싶어 비행기를 탔다. 주민자치프로그램에 중국어반이 생겼다. 강사와 어설픈 대화를 하지만 진도가 더디다. 연습이라도 많이 하면 좋으련만 뭐가 그리 바쁜지 수업 갈 때만 책을 펼쳐보게 된다.

강사의 제의로 상하이와 항저우로 가는 패키지여행을 하기로 했다. 9명의 회원들이 설레는 마음을 누르고 기대감을 잔뜩 안고 상해에 도착했다. 우리가 배운 것을 얼마나 쓸 수 있을지를 이야기하며 흥겨웠다.

저가 상품이라 한국에서 가이드가 동행하지 않았지만 별 문제 없이 현지에서 가이드를 만났다. 그런데 첫 인상이 영 맘에 들지 않았다. 웃음기 없는 얼굴에 별다른 말도 없이 차가 오기를 기다리자고 했다.

차에 오르면 다르겠지 선입견을 버려야지. 자신을 소개하고 간단히 우리의 목적지를 말하더니 중국 예찬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말겠거니 했는데 갈수록 태산이다. 한국을 비하하는 것 같은 발언에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더 기분 나쁜 것은 그 사람이 조선족이라는 거다. 자신의 피가 한국인임을 밝힌 사람이 시간이 갈수록 중국예찬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그러더니 곧바로 선택 관광을 하라고 한다. 이미 여행상품을 고를 때 선택 관광을 선정했는데 또 하라니 기분이 나빴다. 더구나 초반부터 기분을 상하게 해서인지 선택 관광을 하고 싶지 않았다. 기분이 나빠진 그 사람은 돈은 아낀다고 모아지는 게 아니라며 간접적으로 우리를 질타한다.
시작부터 찝찝했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가는 곳마다 어설픈 중국어를 쓰기도하고 물건을 살 때 깎기도 하며 나름 한 단어라도 더 쓰려고 노력했다. 어차피 우리의 목적은 체험학습이니까.

둘째 날도 선택하라고 권유했지만 이미 기분이 나빠진 일행은 아무도 하지 않으려했다. 가이드는 고객을 보고 설명하고 인사하는데 이 사람은 앞의 창을 보고 혼자 주절거리고 있었다. 여행을 다녀봤지만 이런 자세로 안내하는 사람은 처음이다. 일괄적이지 않은 중국역사의 설명. 이곳저곳을 찔러보는 것 같은 설명에 짜증이 나서 아예 듣고 싶지 않았다.

나름 이곳에 대해 조금은 공부하고 온 나로서는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보고 속이 부글거리기 시작했다. 우리 팀만 있었다면 따지기라도 할 텐데. 우리 팀 외에 두 팀이 더 함께 했기에 나로 인해 여행을 망치지 않게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셋째 날. 단체관광일 경우 중국에서는 비자를 한사람이 가지고 다니며 일행은 비자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을 뒤따른다. 비자를 가지고 다니는 분(우리는 그를 반장이라 불렀다)이 아침 식사시간에 우리 자리로 왔다. 서로 불편하니까 선택 관광을 하자는 거였다. 나는 단호히 거절했다. 친절하지 않은 사람을 위할 필요는 없으며 가이드의 행동여하에 따라 달라질 거라고 말했다.

반장이 가이드를 만나 이야기하는 것 같다. 처음으로 생수를 차에 올렸다. 가이드 기분이야 어떻든 우리는 나름대로 중국어를 써가며 조금씩 대담해지고 있었다. 처음에 입이 떨어지지 않다던 회원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이래서 현장체험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틀려도 괜찮으니 많이 써보라고 했다.

우리나라 여행상품은 쇼핑센터에 가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있다. 별 볼일 없는 곳을 관광하느니 차라리 쇼핑센터가 더 나을 것 같았다. 필요한 것은 사면되고 불필요한 것은 사지 않으면 되기 때문이다. 가이드는 생각한 것보다 매출이 오른 것에 기분이 좋아졌나보다. 두 곳의 쇼핑센터를 지난 후 가이드의 입 꼬리가 올라간다.

치사하기도 하고 화도 났지만 참을 ‘忍(인)’자를 새기며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화를 눌렀다. 우리는 팁도 지불했다. 물론 그들은 이런 부수입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렇더라도 좀 더 상냥하고 친절했더라면 그가 권한 것들을 매몰차게 잘라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유명한 여행사가 내놓은 상품에 대한 불신의 벽이 생겼다. 해외여행 인구가 점점 늘어나는데 상품만 팔 것이 아니라 서비스도 상품에 포함되었으면 좋겠다.

저가 여행의 오점은 가이드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저가 상품일지라도 질적으로 만족을 느껴야 다시 그 여행사를 찾을 것이다. 다행히 함께 한 분들이 좋아 서로를 배려하고 폐가 되지 않기 위해 애쓴 결과 헤어질 때 웃을 수 있었다.

얼마나 忍자를 가슴에 새겼는지 집에 오자 몸이 쳐지기 시작했다. 주위 분에게 누가되지 않게 하기위해 노력한 결과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몸살로 누웠다. 중국어를 쓰고 희희낙락하며 조금 더 언어구사를 잘하기만 바란 여행에서 인내를 배우고 왔다.

다음은 어떤 여행이 기다리고 있을까. 또 무엇을 배우고 오게 될까. 미지의 여행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까. 설렘을 가슴에 담고 또 떠날 준비를 한다.

이혜숙 음성수필문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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