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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무상무념 (無想無念)의 길을 걸으며

한기연 시인·평생교육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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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01.14 16:02
  • 기자명 By. 충청신문

커다란 나목(裸木)에 기둥을 이루며 흘러내려 굳어진 얼음이 작품처럼 서 있는 카페 앞에 걸음을 멈췄다. 몇 그루의 크고 작은 나무가 커다란 고드름을 달고 있었다. 겨울 추위를 오롯이 견디고 있는 나무에 주인이 수십 번 물을 뿌려 만들어 낸 듯 보인다.
새해가 시작되고 보름이 다 되어 가지만 새로움과 희망을 생각할 겨를 없이 바빴다. 시댁 남매계 모임도 빠지고 싶었지만, 가까운 진천으로 정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참석했다. 총무를 맡고 있는데도 당일 준비하느라 가장 늦게 도착했다. 그 날은 시끌벅적 술판이 벌어졌다. 다음 날 아침, 남편이 근처 절에 가자는 걸 뿌리쳤다. 이불속에 잠시 누워 있다가 새해부터 어지럽고 복잡한 심경을 털어내고 싶은 마음에 따라 나섰다.
보련산이 보이는 숙소 주변도 경치가 좋았는데, 보탑사로 향하는 길도 겨울이란 계절에 시간이 묶인 것처럼 고즈넉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세월의 흐름은 보탑사 입구에 우뚝 서 있는 느티나무가 말해 주고 있었다. 3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자리에서 굵은 가지들을 뻗어간 모습에 경이로움마저 느껴졌다. 이 곳은 일주문이 없이 바로 천왕문이 보였다.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을 모신 곳이다. 칼을 들고 있는 동방지국천왕, 비파를 들고 있는 다문천왕, 삼지창과 보탑을 들고 있는 광목천왕, 용과 여의주를 들고 있는 증장천왕 등 천왕마다 다스리는 일이 다르다고 한다. 동행한 막내 시누이가 설명을 해 주니 귀에 쏙 들어 온다.
경내에는 삼층 목탑이 있었는데 우리나라 목탑 가운데 최고로 높으며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보물 제404호로 지정된 고려시대 석비인 ‘진천 연곡리 석비’가 있다. 거북받침 위에 비몸[碑身]을 세우고 비머리[螭首]를 얹은 일반형 석비로 비문이 없어 일명 백비(白碑)라고 불린다. 거북모양의 받침돌은 얼굴 면이 손상되어 말머리같이 되었으며 앞 발톱이 파손되어 있었다. 넓은 마당에 들어서 있는 사찰과 삼층 목탑, 비문 등 하나 하나 세세히 살펴 볼수록 차분해졌다. 그 동안 가슴을 누르던 커다란 돌덩이가 부서져 모래알로 흩어져 내리는 듯 가벼워졌다.
묵언 수행하듯 양쪽에 서 있는 범종과 법고의 소리가 가슴으로 전해진다. 매사에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경종의 소리, 하나를 더 채우려고 안달하는 욕심을 경계하는 소리, 만족을 모르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다툼의 소리, 세상 모든 일에 얽혀 있는 쇳소리를 덮는 오늘의 침묵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절을 내려오며 불교에서 말하는 무념무상(無念無想)은 아니더라도 무상무념(無想無念)의 편안함으로 걸었다. 원불교대사전에 의하면 무념무상(無念無想)은 일체의 분별과 상이 끊어진 삼매의 진경으로 수행을 통해 분별 망상과 일체 애착을 넘어서 무아의 경지에서 도와 하나가 된 주객일체(主客一體) 물심일여(物心一如)의 지극한 경지를 말한다. 즉, 수도와 정진을 하면서 불심을 담은 채로 마음의 최고의 평화를 지닌 상태로 머릿속이 깨끗한 경우를 일컫는다. 어순이 바뀌어서 잘못 쓰는 일도 많은 무상무념(無想無念)은 잡생각이 없는 것으로 일체의 想念(상념)을 떠나 마음이 빈 듯이 담담한 상태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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