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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지친 벗에게 마음을 전하는 달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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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01.21 16:04
  • 기자명 By. 충청신문

2019년을 희망차게 시작하고 싶었다. 12월 31일이라는 시간에 금을 그어 정리를 했다. 달력을 쳐다보며 인디언들처럼 1월은 ‘희망을 적립하는 향기로운 달’로 명명하였다. 그리고는 방학을 맞아 학위를 같이 받았던 후배 3명과 여행을 가기로 했다. 아이들과 엄마만 떠나는 여행이었는데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동시에 교육을 들어가는 바람에 나 혼자 가기로 결정을 하고 예비모임을 가졌다.

예비모임을 가진 날 심석희 선수의 성폭력에 대한 뉴스가 나왔다. 산뜻하게 시작한 새해를 저런 말도 안 되는 일로 망친다며 분개하면서 아들만 둘을 키우는 후배 A에게 그래도 아들만 있으니 걱정이 덜하겠다고 했더니 대답 대신 웃기만 했다. 그 후배는 능력 있는 유치원원장에다 대학교 강의까지 무엇이든 적극적이었다. 다만 감정의 기복이 좀 심했는데 그래서 우리끼리 어디로 튈지 모른다고 이야기를 하고는 했다.

공항에서 4집 식구 9명이 만나 서로 간에 인사를 나눴다. 그 후배 A의 작은아이를 본 순간 머리를 하나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키도 크고 얼굴도 핸섬한 아이는 여느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담빡 알았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이틀이 지나도 도드라진 행동도 없었고 같이 온 형의 말을 잘 듣고 따라 보기 좋은 형제라고 칭찬을 했다.

3일째 되는 아침 후배 A가 식사를 하러 내려오지 않아 연락을 했더니 아이가 밤에 열이 올라 호텔 근처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말을 했다. 아이는 해외여행은 처음이라 했다. 엄마와 형이 있지만 18년 동안 낯익은 환경에서만 생활하다가 낯선 곳에서 보내는 일이 벅찼나보다. 그곳의 병원은 여행자여서였는지 해열제 처방만 할 뿐 그 어떤 것도 해주지 않고 기다리라는 말만 했다고 한다. 오후가 되어도 열이 내리지 않아 먼저 귀국하겠다고 항공사에 연락을 했지만 비행기 좌석이 없어 병원에서 더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먼 이국에서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아이의 열은 내리지 않고 아이 곁에서 노심초사했을 그녀의 안타까움을 같은 엄마라 하지만 어찌 다 이해할 수가 있겠는가?

후배는 밤새 뜬눈으로 아이 곁에서 밤을 새우고 우리의 여행을 망칠까봐 그 걱정을 또 했다. 우리가 모여 있는 방으로 와서 아픈 아이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일정 소화하라고 말하고는 잠이 들어버린 그녀를 보니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가 마음을 짓눌렀다. 다행하게도 저녁이 다 되어서야 열이 내렸다. 아이는 엄마의 걱정스런 마음을 헤아리기 보다는 형과 누나들과 같이 놀고 싶다고 졸랐다고 한다. 그래서 마지막 밤에 호텔 밖으로 나와 불꽃축제를 함께 보고 9명의 완전체가 되어 현지 식으로 맛있는 식사를 한 것이 서로에게 위안이 되었다. 같이 간 또 다른 후배들의 아이들이 편견 없이 대하는 것을 보고 우리 후배님들은 아이를 참 잘 키웠다는 생각도 했다.

여행을 다녀 온 후 그 동안의 내 언행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녀와 알고 지낸지가 6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한 번도 아픈 아이가 있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거기에 만나면 아이들의 공부, 취업 등의 고민들을 이야기 했으니 그녀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호강에 겨운 이야기였을까? 발달장애 아이를 둔 엄마의 마음이 어찌 늘 정상일 수 있겠는가? 그런 그녀 뒤에서 감정기복이 심하다고 뒷담화를 했으니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다.

발달 장애아를 둔 엄마들이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저 엄마 죽고 싶겠다”, “키울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간다”, “임신 때 담배 피우고 술 마셨어요” 등이라니 그런 시선과 편견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겠는가? 그래서 후배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이해가 된다.

나는 1월 달력을 바꿨다. “지친 벗에게 마음을 전하는 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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