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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마음 밭

변정순 음성문인협회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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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01.29 15:23
  • 기자명 By. 충청신문

살 것 같다. 

거실 마룻바닥이 뜨끈하니 새로 설치된 보일러가 작동이 잘 되는가 보다. 이제 서야 안심이 되고 마음도 따뜻해져온다. 기름을 아끼느라 난방을 꺼 놓는 것과 보일러 고장이 나서 난방이 안 되는 것은 받아들이는 마음이 천지 차이다. 시골에 살면 여름에는 잡초관리, 겨울에는 난방 관리하는 일은 참 큰일이지만 이런 일로 이렇게 엄살 떤 마음도 처음이었다. 

겨우 하룻밤, 어젯밤은 추운 한파도 아닌데 불기 없는 방에서 지내려니 금방 얼어 죽을 것 같은 마음이었다. 외출해서 돌아와 보일러 온도를 높여놓고 한참을 있어도방 바닥이 미적지근도 안하여 스위치를 둘러보니 빨간불이 깜박 깜박 작동불능이었다. 추운 날 큰일이었다. 더군다나 휴일 날, 서비스가 될까싶어 미심적은 마음에서 현재 사용하는 보일러 G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상담원은 “12번 숫자가 뜨면 에러가 난 것이니 설명 하는 대로 해 보세요” 한다. 스마트 폰을 들고 보일러실에 들어가 보일러 뚜껑을 열어 제치고 어설프지만 상담요원이 시키는 대로 만지작거렸다. “기계에 대한 용어로 잘 모르고 힘이 모자라 잘못 하겠어요.” “그럼 동영상을 보내 줄 테니 그거 보시고 다시 한 번 해보세요.” “동영상보고 똑같이 해도 보일러가 작동이 안 되네요. 다시 접수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접수해 드리겠습니다.” 숫자 12번은 에러 코드 인데 대개 기름통에 기름이 없거나 화염감지기가 그을음이 있을 경우 에러가 나니 자가진단을 하라는 것이었다. 사실 기름통 옆에서 보일러를 만진다는 것은 무섭기도 하고 그자체가 싫었다. 정식으로 접수가 되기까지는 쾌나 긴 시간이 흘렀고 휴일은 셀프 AS 접수만 가능하고 월요일에나 방문한다는 상담원의 덧붙이는 말에 슬그머니 짜증이 올라와 또 습관처럼 ‘관세음보살’ 염송을 했다. 그러나 며칠을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어 다른 몇 군데 설비에 전화를 하였지만 전화를 받는 곳은 사정이 있어 못 오고, 나머지는 휴일이어서인지 받지를 않았다. 간신히 한곳 설비업체에 통화가 되어 사정이야기를 하니 바로 출장을 온다고 하여 너무나 고마운 마음이었다. 그의 손을 거친 고장 난 보일러는 전원을 켜니 집 한 채를 집어삼킬 듯 검은 연기를 내뿜었고 불꽃까지 튀었다. 십년가까이 사용했던 보일러를 수리하기에는 너무 많이 노화가 되어있었다. 수리를 해도 무서워서 도저히 사용할 수 없어 새 보일러로 바꾸어 달라고 하니 밤사이 얼어붙은 호수를 녹여가며 보일러 설치를 해 주시어 덕분에 따끈한 거실에 앉아 언 마음을 녹이고 있다. 

지난밤은 추우면 친정집에 가서 잘 수도 있었고, 사실 온수매트를 깔아 바닥은 따뜻하였고 수면 옷은 두 겹을 껴입어 갑갑하기까지 했는데 뭐가 그리 불안했었는지 모를 일이었고 누가 알아준다고 이까짓 일로 무서움에 떨었는지 웃기는 일이었다. 

집안에 전자제품이라든가 살림살이가 고장이 나도 얼른 고쳐 쓰는 성격도 아닌데 말이다. 매순간 힘들 때마다 염불로 응석 부리는 것은 또 뭔지, 점점 갈수록 약해지는 마음, 노화되는 마음을 어떻게 하면 씩씩하고 건강한 새 마음으로 바꿀 수 있을까. 함께 지고 가던 짐을 내게 맡기도 훌쩍 가버린 그를 다 보냈다 면서도 또 그에게 기대고 싶어지는 마음이련가. 

내 마음은 왜 이리 에러난 보일러 수위치 처럼 불안정한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마음 밭에 넉넉함과 홀로서기 씨앗을 심고 다지면 어린아이 같은 내 마음 밭은 곧 단단해져 어른 밭이 될 거라 믿는다. 

내 주위엔 나를 응원해주는 따뜻한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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