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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방학을 잃은 아이들

김도운 한국안드라고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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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02.17 16:24
  • 기자명 By. 충청신문

방학(放學)은 혹서기와 혹한기 동안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면서 학업에 전념하는 본연의 일을 내려놓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학업의 압박으로부터 해방돼 친구와 어울리고, 자연과 어울리는 시기인 것이다. 그런 의미대로라면 요즘 아이들에게 방학은 없다. 학업에서 완전 벗어날 수 없을 뿐 아니라 자연과 접할 기회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친구들과 맘껏 뛰어놀 시간이 제공되는 것도 아니다. 정해진 등교와 하교가 없을 뿐이지 학기 중일 때와 별반 다른 것이 없다. 

방학이라고 해서 모든 학업을 온전히 내려놓은 아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전국을 다 뒤져도 손으로 헤아릴 수 있을 정도일 것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방학이라도 어떤 형태로든 학업과 연관된 활동을 한다. 과외를 하거나 학원을 다닌다. 그도 아니면 학교에서 시행하는 방과후 프로그램이라도 참여한다. 가정형편이 넉넉한 집안의 아이들은 어학연수를 떠난다. 어떤 부모는 학원 심화학습 반에 아이를 등록시켜 평소보다 심하게 채찍질을 가한다. 이래저래 아이들에게 방학은 없다.

한 세대 전으로 시계바늘을 돌려보자. 지금의 초중고생 학부모인 40대와 50대 성인들이 지낸 방학을 돌이켜보면 그 때야말로 진정한 방학이었다. 방학을 시작해 개학 때까지 한 달 넘는 기간에 책장 한 쪽 넘겨보지 않고 놀기만 하다가 지내기가 일쑤였다. 개학이 임박해 밀린 방학숙제를 몰아서 한 기억은 누구에게나 추억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지금 사회의 낙오자가 됐고, 부적응자가 돼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방학은 세상과 통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시골학생들은 도시생활, 도시학생들은 시골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 아주 값진 시간이었다. 방학이 되면 친척 집에 가서 몇 주씩 기거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했던 일이 당시로서는 일상이었다. 아이들은 방학을 맞아 동네를 찾아온 외지 아이들과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잘 어울렸다. 도농 간 문화교류가 방학기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요즘 부모들은 친척집에 아이를 맡기면 폐가 된다며 단 하루도 보내지 않는다. 

방학은 이처럼 소중한 시간이었다. 친척 집을 방문하는 일 외에도 중고생쯤 되면 부모의 동반 없이 친구들끼리 캠핑이나 아영을 떠나거나 여행에 나서는 일도 많았다. 대개의 여행은 고생스러웠다. 예기치 못한 위기상황이 수시로 찾아왔다. 그러면 친구들끼리 회의를 통해 의견을 조율하면서 대책을 세워 나갔다. 자연스럽게 세상 이치를 터득해나가는 과정이었다. 몸과 마음을 키워 성숙하는데 그 보다 더한 공부는 없었다. 

요새 아이들은 방학이 별다른 의미가 없다. 그저 학기 중일 때보다 조금 더 게을러질 수 있고, 늦잠을 잘 수 있다는 것 정도가 유일한 혜택이다. 새로운 경험을 할 어떤 기회도 없다. 부모들은 춥다고, 덥다고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 있으라고 한다. 시간 맞춰 학원이나 다녀오라고 한다. 집에 있으면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TV, PC, 핸드폰에 집중한다. 습관이 돼 밖에 나가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아까운 방학 시간이 시나브로 흘러간다. 

‘자연보다 위대한 스승은 없다’는 말은 만고의 진리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성적이나 입시 문제는 진리마저 무릎을 꿇게 한다. 자연을 찾고, 친구를 찾는 것은 요즘 아이들에게 사치이다. 사실은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다. 집안에서 TV만 보면서 냉장고를 뒤지는 지금의 아이들 모습은 모두가 부모들이 만들었다. 시간 맞춰 학원만 다녀오면 그날 할 일을 다 한 것으로 인식하는 학원돌이가 착실한 아이의 전형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부모의 기대치가 딱 거기까지이다. 

그렇다고 아이들은 공부를 하지는 않는다. 게임이나 하고 핸드폰이나 만지작거리다가 아까운 방학 시간이 다 흘러가고 있다. 썰매 한번 못 타보고, 연 한번 못 날려보고, 모닥불 한번 못 피워보고 황금 같은 방학이 지나고 있다. 부모의 손을 벗어나 친구들과 어울리며 무엇이든 제 손으로 해볼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인 방학이 지나고 있다. 이런 방학이라면 없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아이들에게 값진 방학의 의미를 되돌려주어야 하는 것은 사회 전체가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절실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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