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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기회의 신 카이로스

한기연 시인·평생교육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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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02.18 16:06
  • 기자명 By. 충청신문

커다란 물고기가 낚싯줄에 매달려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물고기만 살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그 줄을 잡고 있는 낚시꾼과 그의 동료들도 놓치지 않으려고 온 몸을 다해 휘청이며 끌어 올리려고 한다. 보는 이로 하여금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 올리는 영상과 음악에 빠져들고 있다. 그런데 결과는 물고기의 승리로 끝났다. 연예계를 대표하는 자타공인 낚시꾼들의 허망한 표정이 정지된 화면처럼 몇 초간 이어졌다.

조금 전 놓친 물고기에 대한 미련을 털어 내지 못하던 출연자의 모습에 마음이 동요되었다. 낚시에는 문외한이지만 최근 쇼핑하면서 겪었던 일과 비슷한 부분의 아쉬움이 있었다. 며칠 전 스마트폰 쇼핑앱에서 몇 시간 동안 검색해서 마음에 드는 옷을 장바구니에 담아 놨다. 바로 결제하지 않은 것은 내 나름대로 한 번 더 생각하고 같은 제품을 더 싸게 살 수 있는지 검색하려는 요량이었다. 몇 시간 뒤 구매하려고 들어 가보니 장바구니에 있던 물건이 없어졌다. 처음 그런 일을 겪었을 때는 내가 쇼핑을 안 한 줄로 착각했다. 그 뒤 몇 번 더 장바구니에 물건이 없어지는 걸 보고서는 ‘타임세일’을 진행하는 물품은 그 시간에 바로 구매하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걸 알았다. 그야말로 놓친 물고기였다. 아쉬움은 배가 되었고, 결정력 장애를 갖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책망으로 이어졌다.

얼마 전 뉴스에서 ‘타임마케팅’에 대한 정보를 보고 스마트폰에서 했던 쇼핑에 대한 이해도 쉽게 되었다. 최근 불경기가 지속되면서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특정일이 아닌 특정시간을 정해 일정시간에 초특가 상품을 판매하는 ‘타임세일’이라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 알게 되어 틈만 나면 들여다보게 된 쇼핑앱은 하루 24시간을 세분화해 다양한 상품을 파격 가에 판매하고 있다. 타임별로 상품을 제한된 수량만큼 팔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늦으면 매진되는 게 다반사였다. 노력하지 않고 얻어지는 것은 없다고 하더니 좋은 상품을 저렴하게 사려는 것도 노력과 집념이 필요했다. 상품을 볼 줄 아는 안목과 순간의 선택에 따른 빠른 결정이 요구되었다.

며칠 동안 휴대폰을 옆에 끼고 쇼핑에 빠졌다. 타임세일을 알리는 알람이 울리면 득달같이 달려가 검색을 하거나 시시때때로 스마트폰을 보게 되었다. 호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내 모습을 보면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카이로스가 생각났다. 카이로스는 그리스어로 기회 또는 특별한 시간을 의미한다. 기회의 신으로 불리는 카이로스의 모습은 앞머리는 길지만, 뒷머리는 머리카락이 없다. 또한 발에는 날개가 달려 있고, 왼손에는 저울과 오른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 이 모습은 앞머리가 길어서 기회를 제 때 잡으면 놓치지 않고 쉽게 잡을 수 있는데, 그 시기를 놓치면 뒷머리에 머리카락이 없어서 잡을 데가 없다는 의미를 지닌다. 기회를 놓치면 날개달린 발로 눈 깜짝할 사이에 달아나고 만다. 언제가 기회인지, 어떤 일이 기회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것이 기회다’라는 판단을 저울에 달듯이 잘 해야 하고 칼로 자르듯이 단호한 결정이 요구된다.

기회가 왔을 때 그 때를 알고, 분별해내서 타이밍을 맞추는 게 쉽지는 않다. 쇼핑타임도 날카로운 안목과 판단력이 필요한데 하물며 우리 인생은 더 많은 고민이 요구됨은 당연하다. 인생을 돌아보면 지나고 보니 좋은 기회였음을 알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과거에 놓친 타이밍을 아쉬워하고 후회하기 보다는 실수를 줄이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회는 준비하는 자의 몫이기도 하다. 인생도 그에 맞는 준비를 하고 기다리면 카이로스의 앞머리를 움켜질 수 있는 혜안을 지닐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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