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세상사는 이야기] 호모 루덴스의 나라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19.02.26 16:59
  • 기자명 By. 충청신문

호모 루덴스(Homo Ludens)는 유희의 인간이란 뜻이다. 라틴어로 ‘놀다’라는 뜻의 Ludens를 써서 1938년에 요한 하위징아라는 네덜란드 학자가 말한 이론이다.

우리가 즐기는 모든 문화와 심지어 철학까지 인간의 놀이에 의해서 생기고 발달했다는 가설인데, 고대의 노래하고 춤추던 행위에서 종교의식과 제례가 발달하고, 끼적거리던 낙서를 통해 미술이 발달하며, 무리지어 노는 행위에서 스포츠가 생겨났다는 개념이다.

놀이를 통해 경쟁을 하고, 놀이를 통해 규칙을 설정하는데서 질서와 문화의 개념이 확립됐다는 이론은, 확실히 인간은 놀이를 통해 많은 것을 만들어 내거나 발전시킨다는 점을 알려준다.

동물은 새끼 때 놀이를 통해 사냥법과 무리의 서열을 익힌다. 개나 고양이는 서로 목덜미를 물고, 또 물리지 않으려 뒹굴며 사냥법과 전투방법을 익힌다. 

인간은 외형적인 놀이는 차치하더라도, 내면 깊숙한 곳에서 이미 놀이를 즐기고 있다. 생각해 보면 어릴 적엔 길을 걷다가도 불현듯 보도블록의 검정 혹은 빨간 블록만 밟으며 총총걸음을 하며 나름의 놀이 규칙을 스스로 만들어내며 자랐다.

부모님께 꾸중 들으며 눈 둘 곳이 없어 바라보던 벽지모양이 갑자기 동물모양으로 보여 같은 모양을 연상하며 벽지에서 숨은 동물 그림 찾기를 하기도 했다.

또 산을 오르다 우연히 바라본 돌무덤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저기서 어느 부분의 돌을 빼면 탑이 무너질까’ 싶은 생각에 돌을 던져 맞혀서 무너뜨리던 장난이, 요즈음엔 모바일 게임의 콘셉트가 되어 수백억의 매출을 올리는 게임회사의 토대를 이루기도 한다.

그런 우리가 커가면서 노는 문화에는 인색해진다. 국가경쟁력이 될 만한 천연자원이 거의 없어 인적자원이 최고의 자원이 되어있는 한국의 경쟁체계에서 노는 문화에 인색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특징을 감안하더라도 우린 놀이 문화에 대해서는 유독 인색하다. ‘놀 시간에 한 자라도 더 봐라’라는 논리는 놀이보다 입시경쟁체계를 심도 있게 파헤친 드라마가 최고의 시청률로 막을 내리는 현상으로도 입증이 되는 듯하다.

그만 놀고 들어가서 책 읽으라던 말이, 요즘은 한가롭게 책 읽을 시간에 문제라도 하나 더 풀라는 말로 바뀌었으니 점점 놀이의 범주가 줄어든다. 다양한 전공을 위한 대학의 수와 분야는 늘었지만, 교육예산의 효율성이란 이름으로 취업률과 재학생 충원율로 수치화 시켜 서열화 된 대학교육현장은, 이미 학문의 장이 아닌 그저 취업준비시장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대학 4학년은 오로지 취업준비에만 올인하니, ‘열심히 하고 대학 붙어서 그때 놀아라’던 예전이 그립다. 이런 현실엔 노는 문화를 이야기할 사회적 분위기를 기대하기가 힘들다. 사회 계층화가 점점 공고해지니 오직 교육만이 계층 간 사다리로 이용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는 법’에 관한 한, 한국은 호모 루덴스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예전부터 그랬었나 싶은 게, 고대 중국문헌에 우리민족을 동이족이라 칭하며 유독 눈에 띄게 언급하는 대목이 있다. ‘활쏘기를 좋아하고 음주가무에 능하다’. 한마디로 흥의 민족이란 얘기다.

세계양궁은 한국양궁이 독주하다 못해 이제는 상위권 국가들의 코치진은 죄다 한국인이다. K-Pop은 세계적인 문화현상이 되어가고 있고. 클래식 분야에선 최정상급 한국인 연주자들이 세계를 누빈다.

전 세계, 특히 유럽의 오페라 하우스에는 반드시 한국인 주역들이 있고, 프로게임리그에서 최상위 한국인 랭커들끼리의 결승전은 이제 흔한 풍경이 되었다.

이게 다 세계인구 대비 0.67%의 인구를 가진 이 조그마한 나라의 독보적인 발자취다. 정말로 특출나다.

현재 직업의 80%가 AI 등장으로 향후 대체될 마당에도 문화와 유희 쪽은 AI 의 영향에서 벗어난 인간의 독보적 영향으로 남아있을 판국에 어쩌면 우리의 특출한 Ludens(놀이)강점이 우리의 미래를 밝혀주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예전 어른들 꾸중 중에 “쟤는 저렇게 오락만 해서 도대체 뭐가 되려고 그러니”라는 소리를 듣던 사람들 중에서는 굴지의 게임 유통회사 CEO부터 억대 연봉의 프로게이머가 되어있는 현실을 본다. 주위를 둘러보자.

그리고 조금만 너그러워지자.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지금 막 우리의 미래를 혼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호모 루덴스다.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