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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포럼] 역대 학교장 사진

김대열 부여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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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03.07 16:17
  • 기자명 By. 충청신문

학교엔 단군 이승복 유관순 세종대왕 낙타 기린 캥거루 등 인물이나 동물의 동상, 각종 기념비, 역대 학교장 사진 등 여러 게시물 들이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위인이나 열사가 조작되었거나 기념할 만한 사람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철거되기도 한다. 

역대 학교장 사진은 어떤가. 학교현관에 40cm 정도 되는 액자에 1대 교장부터 직전 교장까지 순서대로 걸어놓다가 세월이 흘러 역대 학교장 수가 많아지자 자리가 부족하여 여기저기 옮기거나 축소판을 만들어 걸어놓는다. 심지어 오래된 학교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 교장도 걸려있다. 위인도 아니요 배움의 대상도 아닌 역대학교장 사진을 왜 걸어 놓을까 생각해보면 심리적으로는 지배와 굴림의 자리에 앉고 싶은 욕망의 표시이고 문화적으로는 일제식민지 잔재이다. 

충남도교육청에서 3·1절 100주년을 맞이하여 일제 잔재 청산 운동으로 일본인 학교장 사진 떼어내기 운동을 한다고 한다. 잘한 일이다. 하지만 매우 미흡하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교장이나 각급 기관장이 되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낙하산 매관매직 줄서기 아부 이런 단어들이 연상된다. 학교에 결려있는 학교장 사진을 보면 부정적인 면이 더 많이 연상되고 또 높이 걸려있는 사진은 지배와 굴림의 상징이고 그 자체가 일제 잔재이므로 모두 없애자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학교는 배움터이므로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고 보답할 줄 알도록 가르치는 일은 중요하기 때문에 스승의 표상으로 걸어놨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학교에 스승으로 다녀간 사람이 교장뿐인가. 심지어 교장은 학생을 직접 가르치지도 않는다. 학교의 역사로 역대 학교장 사진을 걸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학교와 인연을 맺은 수많은 졸업생을 놔두고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교장이 되면 지방에 ‘현고학생부군신위’이 아니라 ‘현고교장부군신위’라고 쓰겠다며 좋아한다. 가르치는 것보다 관료가 되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았던 이들이 드디어 출세했다고 자기 위안을 표현한 것이다. 선생님들을 종 부리듯 부리면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며 학교를 자기 왕국으로 생각하고 살았던 교장들도 많았다. 

부실한 건물의 대표 격이 학교 건물이다. 설계부터 부실했을 리가 없다. 견고함과 부실의 차이만큼 검은 돈이 생긴다. 학교는 교장만 바뀌면 새로운 공사가 시작되었다. 건물 외벽부터 시작해서 교실 바닥까지, 심지어 멀쩡하게 있는 나무를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 심는다. 모든 공사는 필요에 의해서 한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필요 속에 많은 검은 돈이 끼어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역대 학교장은 얼마나 있을까? 

일제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을 치르고 어려운 생활고를 겪으면서 살아온 사람들의 품격이나 정당성을 지금의 잣대로 잰다면 맞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어떤 교장의 왕국인 학교나 교장이 부실의 대가로 검은 돈을 생각하며 공사하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사회가 민주사회로 또 부정부패의 대가가 매우 큰 사회로 가고 있다. 지위와 권력이 가진 힘을 지배와 굴림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봉사에만 사용해야하는 사회로 가고 있다. 

민중의 역사가 아닌 왕의 역사를 배워온 사람들은 학교장의 역사가 학교의 역사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역대 학교장을 알 필요가 있다면 누군가 찾아 볼 수 있게 학교 일지에 기록해 놓으면 될 일, 사진을 걸어놓는 일은 이제 그만 하자.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 ··· / 이제야말로 아무 두려움 없이 / 그놈의 사진을 태워도 좋다 / 협잡과 아부와 무수한 악독의 상징인 / 지긋지긋한 그놈의 미소하는 사진을 / 대한민국의 방방곡곡에 안 붙은 곳이 없는 / 그놈의 점잖은 얼굴의 사진을 / 동회란 동회에서 시청이란 시청에서 / ··· / 전국의 국민학교란 국민학교에서 유치원에서 / 선량한 백성들이 하늘같이 모시고 / 아침저녁으로 우러러보던 그 사진은 / 사실은 억압과 폭정의 방패이었느니 / 썩은놈의 사진이었느니 / 아아 살인자의 사진이었느니 / ... / 오늘은 서슴지않고 떼어놓아야 할 날이다 / ··· / 아무도 나무랄 사람은 없다 / ··· /.

김수영 시인의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싯개로 하자’라는 시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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