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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퇴계 선생이 경탄한 봄은 언제 올까?

이상호 천안아산 경실련 공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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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03.12 15:56
  • 기자명 By. 충청신문

옛 선비들에게 봄은 매우 기다리던 계절이었다. 겨우 내내 방안에서 난(蘭)을 치고 글을 읽다가 매화꽃 몽우리로 봄을 확인한다. 순간 기쁨에 젖는다. 벗이 그립다. 가솔(家率)들에게는 농사지을 채비를 하라고 일러둔다. 조선 성리학자 퇴계 선생에게 봄은 유독 기다리던 계절이었다. 그에게 매화가 봄소식을 알렸다. 퇴계는 매화를 보며 시를 읊었다. 

매화가 봄을 맞이하여 찬 기운을 머금었기에
한 줌 꺾어다 마주 보았네 옥창(玉窓) 사이로 
천산(千山) 밖 먼 곳 진한 기억 속의 벗님 그리워지는데
매화 향기 점점 줄어드는 것은 정말 못 견디겠네

- 퇴계 이황<매화 가지 꺾어 두고>-

싸늘한 이른 봄이었을 것이다. 창밖을 보니 매화가 피고 있었다. 반가움에 밖으로 나가 한 줌 꺾어다 화병에 꽂았다. 매화의 자태를 보니 벗이 그리웠다. 추위 속에 옥창(玉窓)을 열어젖혔다. 먼 산을 바라보며 벗을 그리워할 수 있는 창이니 단순한 창이 아니라 옥창이다. 천 개의 산이 겹겹이 쌓인 너머의 벗이니 겨울 동안 오갈 수 없다. 얼마나 그리웠던가. 그런데 안타깝다. 화병의 매화가 시든다. 시드는 매화만큼 벗에 대한 그리움은 더해간다. 퇴계에게서 매화는 봄의 환영이며 기다림이며 경탄이었다. 

옛날 사람들은 너나없이 봄을 기다리고 경탄했다. 그러나 나의 올봄은 연일 날아드는 ‘미세먼지 주의’의 재난 문자로 두렵다. 날씨가 따뜻해져서 텃밭 농사를 위해 며칠간 밭에 나갔다. 비닐도 걷고 고추도 뽑아 치워야 했다. 농막 청소, 농기구 정리 등 일이 많았다. 그러나 지난 일주일 동안 밭만 우두커니 쳐다보다가 돌아왔다. 미세먼지가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기상청에 의하면, 올해의 봄은 2월 23일에 이미 시작되었다. 작년보다 11일이나 일찍 찾아왔다. 최근 몇 년간 봄은 조금씩 앞당겨진다. 2016년 봄은 3월 12일, 2017년 봄은 3월 9일, 2018년은 3월 6일 시작됐다. 봄이 빨리 온 만큼 여름도 빨리 찾아온다. 1991~2000년 봄은 86일이었는데, 2001~2010년엔 76일, 2011~ 2017년은 68일로 짧아졌다. 올해는 봄이 빨리 온 만큼 미세먼지와 황사도 심해질 것이란다. 특히 올해는 중국 황사 발원지에 눈비가 오지 않아 온도가 높았기 때문에 중국발 황사와 미세먼지도 더 심할 것이란다. 

며칠 전 대천으로 산행을 다녀왔다. 산 정상에서 바라본 보령화력발전소 굴뚝 연기는 두려움을 더했다. 20년 전 그 주변에 살던 친구의 말에 의하면, 화력발전소의 석탄 분진은 4km 이상까지 날아가 빨랫줄의 하얀 와이셔츠를 망친다. 지난 일주일간 미세먼지는 세계 최악의 재앙이었다. 목이 막히고 금세 재채기가 나오려 했다. 재난 문자가 하루 평균 3통이나 날아들었다. 재난 문자가 오히려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도 거리는 차량으로 넘쳐났다. 

봄이 왔으니 즐거워하며 냉이 캐고 밭고랑 손질하며 즐겁게 농사준비를 해야 하는데 두렵다. 봄이 왔는데, 산과 들, 바다로 봄나들이를 가고 싶은데 두렵다. 봄이 왔는데 정든 벗을 만나야 하는데 나서기가 두렵다. 정말 봄은 반가운 계절인가? 퇴계 이황 선생이 싸늘한 이른 봄 매화를 보며 경탄하고 천산(千山) 밖의 벗을 그리워하던 그런 봄은 언제 우리에게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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